"담보를 제공하면 값을 높이 쳐주겠다. "(산업은행)
"추가 담보 제공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 "(동부그룹)

합금철회사인 동부메탈 매각을 놓고 지난 4월부터 5개월째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산업은행과 동부그룹이 새 국면을 맞았다. 동부메탈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동부 측에 '매각 후 이익 배분'이라는 '언 아웃(earn-out) '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산은,조건부 '언 아웃'방식 매각 제안

10일 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동부메탈 인수 후 이익이 발생했을 때 이를 나눠주겠다는 내용의 언 아웃 방식의 인수방안을 최근 동부 측에 제안했다. 언 아웃은 M&A(기업 인수 · 합병)에 종종 사용되는 기법으로 주로 매수자와 매각자 간에 적정 가격을 놓고 이견이 발생할 때 쓰인다.

산은이 제안한 것은 '담보제공'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동부가 산은에 부동산 등 적정한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산업은행은 동부가 원하는 금액대에 동부메탈을 사들인 뒤 동부메탈에서 이익이 발생해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담보로 넘겼던 자산을 되돌려주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동부의 입장은 긍정적이다. 동부 관계자는 "동부메탈 매각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양측의 의견을 좁힐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해 산은의 제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4000억원 vs 8000억원의 줄다리기

산은이 이례적으로 '담보제공'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동부메탈 가격에 대한 평가가 달랐기 때문이다. 산은은 지난 4월 동부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시장에 내놓은 동부메탈을 사들이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하지만 실사를 시작하면서 양측간의 입장차이가 드러났다. 동부가 8000억원대의 가격을 생각하고 있던 반면 산은은 절반에 불과한 4000억원대를 적정가격으로 제시했다. 동부 입장에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헐값 매각'이었던 터라 좀처럼 협상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협상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지경에 이르렀다.

산은은 "최악의 경우 동부메탈 인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버텼고 동부 역시 "매각을 철회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며 맞섰다.

산은은 기업 구조조정 대상의 '모범사례'로 삼겠다던 당초 취지가 어긋날 가능성이 커지자 결국 절충안으로 2000억~3000억원의 추가 담보대출 방식의 인수를 제안하게 됐다. 산은 관계자는 "동부메탈을 시장 가격보다 높게 인수할 수 없어 일종의 담보 차원에서 자산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부, 담보제공 긍정 검토

동부하이텍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위해 지난 2004년 은행권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신디케이트론을 얻었다. 지난해 만기가 돌아오자 산은 등 채권단은 올해 말까지 재무구조개선을 하라는 조건을 달아 신디케이트론의 채무 만기를 2012년으로 연장해줬다. 동부가 올해 말까지 마련해야 하는 돈은 약 9000억원.이 가운데 4000여억원은 동부하이텍이 보유한 부동산과 주식을 매각해 충당했다. 동부는 나머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부하이텍이 보유한 울산 유화공장을 비롯해 동부하이텍과 합병한 옛 동부한농의 부동산 등을 담보 물건으로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자산 일부를 담보로 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동부는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했다. 동부메탈은 지난해 동부하이텍의 합금철 사업부를 분할해 세운 회사로 지분의 100%를 동부하이텍이 보유하고 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

언 아웃(earn-out)=M&A(기업 인수 · 합병)에서 쓰이는 일종의 이익 배분 방식을 뜻한다. 기업의 잠재가치를 높이 평가해 비싸게 사들이면 매수자로서는 떠안아야 할 위험이 크다. 이럴 때 언 아웃 방식을 사용해 인수를 하면 몇년간 기업을 운영해보고 이익이 발생할 경우 매도자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방법으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프랑스 르노가 지난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할 때 이 방식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