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강남터미널.파주 땅 등 인수 실패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기업 사냥에 나선 롯데그룹이 올 들어 몇 차례 인수합병(M&A)에 뛰어들었다가 번번이 좌절을 겪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올해 1월 두산으로부터 소주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두산주류BG를 인수한 것을 마지막으로 아웃렛 부지에 이어 오비맥주와 강남터미널의 인수에 연거푸 실패했다.

올해 롯데의 첫 번째 좌절은 아웃렛 부지로 확보했던 파주 땅을 유통업계 라이벌인 신세계에 넘겨준 것이다.

롯데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통일동산 내 53만4천여㎡ 가운데 8만6천여㎡(약 2만6천여평)에 아웃렛을 열기 위해 지난해 1월 땅 소유주인 CIT랜드㈜와 장기 임차계약을 맺었다.

이후 이 땅을 매입하기 위해 CIT랜드 측과 협상을 벌이는 와중에 지난 3월 신세계의 기습적인 매입계약으로 땅 소유권을 넘겨줘야 했다.

지난 5월에는 종합주류회사로 부상하기 위해 국내 2위 맥주회사인 오비맥주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미국의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밀려났다.

지난 3일 발표된 강남터미널 입찰결과에서도 사모펀드인 코아에프지㈜에 우선협상대상자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코아에프지 및 현대백화점과 함께 벌인 3파전에서 롯데는 현대백화점에도 밀려 차순위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마저 차지하지 못했다.

롯데의 잇따른 좌절은 지난해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승승장구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롯데는 그룹 차원의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사업을 성사시켰고, 지난해 12월에는 코스모투자자문을 629억원에 전광석화처럼 인수했다.

또 롯데제과는 지난해 8월 네덜란드의 초콜릿회사 '길리안'을 1천700억원에, 10월에는 롯데쇼핑이 네덜란드계 대형마트 '마크로 인도네시아' 점포 19개를 3천900억원에 넘겨받았다.

롯데는 부산은행의 지분도 꾸준히 늘려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올해 1월에는 두산으로부터 두산주류BG를 5천30억원에 인수하며 롯데의 인수합병 성과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처럼 화려했던 작년과 달리 롯데가 올해 들어 인수합병 싸움에서 번번이 패한 데는 '짠물 경영'과 '느린 의사결정' 등 롯데 특유의 기업문화 탓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롯데가 파주 땅 매입협상에서 어물어물 시간을 끌다 신세계의 발 빠른 매입계약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은 느린 의사결정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또 강남터미널과 오비맥주 인수 실패는 롯데 특유의 짠물 경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롯데가 이들 인수전에서 매각주체의 희망 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해 입찰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우량 기업을 거저먹으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정내 기자 j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