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도 경제를 좀먹는 위조 화폐의 기세가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 사이에 현금 불신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마하라슈트라주(州) 범죄수사국 지부와 반테러 수사대는 화폐 위조범 6명을 검거하고 90만 루피에 달하는 위폐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당시 당국이 압수한 위폐는 정교하게 위조된 500루피(약 1만3천원 상당) 짜리 지폐였는데 당국자들도 육안으로는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다.

북부 잠무카슈미르 주도인 스리나가르에 사는 자후르 아마드 미르는 최근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뽑은 500루피짜리 지폐 넉 장으로 물건값을 지급했다가 가게주인에게서 위폐 판정을 받았다.

은행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은행 측은 오히려 그가 위조지폐 유통 범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요즘 위조지폐 관련 범죄와 피해 사례가 급증하면서 국민 사이에 '현금 불신'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화폐 유통 규모가 좀체 줄지 않는데다 최근에는 진폐와 구별이 어려운 위폐들이 대거 유통돼 은행 직원들마저 이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위폐 유통 상황을 감시하는 중앙은행(RBI) 산하 '나이크 위원회'는 현재 시중에 유통된 위폐 규모를 대략 1조6천900억루피(약 43조4천억원)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이 단속을 통해 거둬들인 위폐는 6억 루피에 불과하다.

대부분 위폐가 파키스탄에서 제조되고 있다는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금을 취급하는 주유소나 상점 등에서는 직원에게 위폐 감별 교육을 하는 것은 필수다.

또 위폐 비율이 가장 많은 500루피짜리 지폐는 아예 받지 않는 상점들도 있는가 하면, 현금 거래는 하지 않고 수표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찬디가르주에 사는 라진데르 싱은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주유소에서 500루피짜리 지폐를 냈는데 주유원이 받질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에게 위폐를 조심하라고 하더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케랄라주 공무원인 A.K. 나이르는 "위폐가 내 손에 들어올 것을 우려해 송금할 때는 현금 대신 반드시 가계수표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인도 내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유통되는 위폐는 계속 늘어나는데 단속망에 걸리는 양은 아주 적다.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애를 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도 델리의 상인 연합회는 최근 자체적인 위폐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 가동했지만, 은행 현금 인출기 등을 통해 쏟아지는 위폐를 당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뉴델리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