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기금, 내달부터 은행 부실채권 매입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부실채권 처리를 독려키로 한 것은 금융시장이 회복됐을 때 건전성을 높여 혹시 다가올지 모를 또 한번의 경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은행들은 부실채권 정리 방침엔 수긍하면서도 "단기간에 부실채권을 쏟아낼 경우 헐값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얼마나 털어야 하나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 목표치를 연말까지 1%로 제시했다. 금융위원회 추경호 금융정책국장은 "1% 목표는 부실채권 비율이 낮았던 2007년(0.72%)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모든 은행이 원칙적으로 1%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 비율을 1%로 낮추려면 20조원가량의 부실채권을 털어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6월 말 현재 18개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1.50%로 잔액 규모는 19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1%로 낮추려면 6조5000억원가량을 없애야 한다. 또 하반기에 새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15조원 규모의 부실채권도 처리해야 한다. 연말까지 처리해야 할 부실채권이 2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통상 반기별로 6조~7조원의 부실채권을 처리해온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규모다.

은행별로는 부실채권 비율이 수출입은행(0.47%)을 제외하고는 모두 1%를 넘는다. 시중은행 중에선 우리은행이 1.77%로 가장 높고 하나은행(1.72%),씨티은행(1.70%) 등의 순이다. 우리은행이 1%를 맞추려면 1조3000억원가량을 털어내야 하며 △신한 9000억원 △국민,하나은행은 7000억원을 처리해야 한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사,보험사,증권사 등 제2금융권의 부실채권 규모도 지난 3월 말 11조9000억원에 달한다.

◆어떻게 줄이나

정부는 다음 달부터 구조조정기금을 투입,부실채권을 사들여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20조원 규모로 조성된 구조조정기금 중 15조원이 부실채권 매입으로 배정돼 있다. 이미 4622억원을 투입해 은행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을 매입했고 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해 17척의 선박을 사들였다. 또 사모투자펀드(PEF) 등 민간자본 활용을 위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중은행들이 오는 9월 자본금 1조5000억원 규모로 설립하는 민간 배드뱅크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부실채권 정리로 매각손이 발생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질 경우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 20조원 규모를 처리하고 손실률 50%를 가정하면 BIS비율은 약 1% 떨어지게 된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단기간에 부실채권 처리를 요구해 "헐값 매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당국이 정책적 수단을 마련해 줄 것을 기대했다. 한 은행 여신담당자는 "부실채권 매입 기관과 은행 간 적정 가격 등을 놓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부작용도 우려된다. 모 은행 부행장은 "부실채권비율 1%를 맞추려면 앞으로 중소기업 대출을 더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고 채권 회수 작업도 강하게 해야 한다"며 "이런 게 경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김인식/유창재/강동균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