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파생상품에 대한 사전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금융위원회나 관련 협회에 독립된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여기서 각 금융회사가 판매할 장외파생상품을 사전 심의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민주당 이성남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이 의원은 장외파생상품 사전 규제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 지난 4월 초 국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을 앞둔 상황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가 최근 이 의원의 개정안에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규제안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런 논의의 배경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CDS(신용부도스와프)를 비롯 장외파생상품에서 비롯된 데다 국내에서도 키코,주가연계증권(ELS) 등 장외파생상품을 둘러싼 분쟁과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장외파생상품이 거래소 내 상품과는 달리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위험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 미국 영국 등에서 금융위기를 계기로 장외파생상품 규제에 착수한 것도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장외파생 사전 규제안은 외국에도 그 사례가 없을 정도로 매우 강력해 자칫 자본시장법의 본질을 해칠 소지가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본시장법의 특징 중 하나는 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을 제외한 모든 금융상품을 자유롭게 출시할 수 있다는 소위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본시장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상품을 별도의 장외파생상품 심의위원회가 심사해 판매를 불허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런 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사전 규제론자들은 이에 대해 모든 장외파생상품에 규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며 신규 취급되거나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에 국한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이다. 장외파생상품은 특성상 어느 것이 새로 도입된 것인지,기존 상품의 일부를 변형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계약 주체마다,그리고 같은 계약 주체라도 계약 체결 시마다 그 때 그때 사정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장외파생상품이고 바로 이런 '비정형화'라는 특성이 장외파생상품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사전 규제는 아직 극히 초보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국내 장외파생상품 시장이 피기도 전에 싹을 자르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로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 대신 미국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처럼 지정된 청산소 이용이나 중앙등록소에의 등록을 의무화해 계약 이행을 담보하고 계약 내용을 공시하는 사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다만 거래 주체별로 투자자 보호 정도를 달리해 선물환이나 키코 CDS 등 주로 기업과 금융회사 간에 이뤄지는 계약에 대해서는 표준계약서 사용 등 최소한의 규제만 할 필요가 있다. 또 FX마진거래나 ELS처럼 직접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증거금 상향조정, 계약수 및 편입 종목 제한 등 상품자체가 아니라 운용상 위험 요인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