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완화 법안이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대기업이 은행업에 실질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보험 · 증권중심 금융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 보유를 허용한 이른바 '공성진 안'에 금융위원회가 정부 입법으로 발의한 금산분리 완화 내용까지 포함시켜 한꺼번에 처리된 것이다.

◆10월부터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은행법 개정안이 의결된 데 이어 이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처리돼 금산분리의 빗장이 결국 풀렸다. 개정 법안이 시행에 들어가는 오는 10월10일부터 대기업들이 은행을 자회사로 보유한 KB,우리,신한,하나 금융지주회사의 지분을 최대 9%까지 인수,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막으려고 1995년 주식 보유 한도를 8%에서 4%로 낮춘 지 14년 만에 은행업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여유자금을 끌어들여 국내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은행의 자본 확충으로 기업의 투자와 생산 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향후 우리금융지주와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정부 소유 은행의 민영화 때 다양한 투자자를 유치,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위기시 은행자본 확충에 있어 다양한 민간자금을 활용할 수 있어 재정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황인학 산업본부장은 "법 통과로 산업자본이 은행 증자에 참여할 길이 열렸다"면서 "은행의 대출 여력이 확대되면 기업들이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덕분에 기업투자가 촉진되고 생산과 일자리가 확대돼 경기 회복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경제 위기 탈출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산업자본의 경제력 집중을 우려하는 여론의 반대가 큰 데다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시 대주주 감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실질적인 투자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부도 대기업의 은행 소유시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대주주와 은행 간 자금거래를 제한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GE식 경영모델도 도입 가능

재계는 당장의 투자 실익이 크지 않은 금산분리 완화보다는 비은행 금융지주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둘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더 반기는 분위기다. 금융과 제조업 계열사가 뒤얽혀 있는 대기업집단의 경우 금융회사를 처분하지 않고도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기업규모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SK의 경우 SK증권을 매각하지 않고 그대로 자회사로 보유한 채 지주사 전환이 가능해지면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대한생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그룹에도 적용 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처럼 금융 · 제조업이 하나의 그룹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이 국내에서도 가능해졌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다만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금융권역별 리스크의 차이를 감안,증권지주회사와 보험지주회사에 각각 다른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고객수탁자산을 고유계정으로 운용하는 보험사의 경우 계약자 이익 훼손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지주회사가 직접 지배하는 경우에만 비금융계열사 보유를 허용한다. 자회사(보험사)가 제조업 계열사를 보유하는 것은 금지된다. 반면 증권 중심의 지주회사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져 지주회사-증권사-비금융 손자회사 구도가 가능하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