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1일 출구전략(Exit Strategy · 위기 이후에 대비한 유동성 회수 전략) 수립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조동철 KDI 연구부장은 "연초만 하더라도 위기가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졌지만 불과 반년 만에 경기 회복의 속도를 논할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며 "위기 이후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출구전략의 핵심인 금리인상과 통화환수,팽창적 재정지출의 정상화 등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안에서도 인식차가 커 시기와 속도를 놓고 논란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통화 · 재정정책 정상화

조동철 부장은 "미국의 경우 IT버블 붕괴와 9 · 11 테러 발생시 공격적으로 인하했던 금리를 경기반등 시점인 2003년 이후에도 장기간 유지한 것이 최근 경기침체의 원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통화정책도 상황에 따라 정상화하는 게 맞다"며 "특히 현재 우리의 목표금리(한은 기준금리, 연 2.0%)는 자산시장과 실물시장에서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물가안정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 한 지나친 '저금리'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정책 변경은 결국 경기상황에 대한 판단의 문제"라며 "현재 수준에서 부분적인 금리인상이 이뤄지더라도 '긴축기조로의 전환'이라기보다는 '부양강도의 조정'으로 시장은 받아들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부장은 따라서 "현재의 초저금리 상황을 충격 없이 정상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상화 과정은 가급적 조기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하반기 중 조기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금리정책도 결국 글로벌 공조가 불가피한데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도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낮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먼저 가는 데 대한 부담이 있는 데다 국내 물가도 안정 수준이어서 실제 금통위가 금리인상에 나설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정확대 기조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여전히 출구전략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주장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해 35%를 넘어 2013년에는 5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정악화를 막기 위해 기존의 확대정책 기조에 일정 정도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 부장은 "세출 구조조정은 선진국에 비해 지출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지원사업이나 실효성이 낮은 일자리 및 복지사업부터 철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세수증대 차원에서는 비과세 · 감면과 에너지 다소비 품목 등에 대한 세율인상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수 경기가 부실한 상황에서 섣부른 출구전략 시행으로 경기가 다시 가라앉을 경우 책임 공방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주도적으로 나설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각종 비상조치 정상화는 당장 서둘러야

통화 및 재정정책 변화에 앞서 작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취해진 각종 비상조치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회수해야 한다는 게 KDI의 권고다. 더 연장할 경우 오히려 시장의 자율반등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은행의 외화차입금에 대한 정부보증이다. 정부는 은행의 외화유동성 확보를 돕기 위해 외화채권 발행시 정부보증 기간을 당초 올해 6월에서 연말까지 연장했다.

KDI는 그러나 이미 시중 유동성 상황이 작년 리먼 사태 이전으로 회복된 만큼 정부보증의 연장은 조기 종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작년 말 이후 외화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정부에서 빌려 쓴 일반유동성자금 192억달러를 최근 전액 상환할 정도로 자체 외화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이다.

정종태/박신영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