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만능주의'의 강성 노동운동이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산하 지역 단위노조 가운데 대표적 강성 노조인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이하 울산플랜트노조)가 지난 4일 시작한 파업을 철회하고 집행부도 총사퇴했다.

20일 플랜트노조에 따르면 쟁의대책위원회에서 조합원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면서 파업을 철회했다. 이문희 울산지부장을 포함한 집행부는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노조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일감이 없는 사용자 측(플랜트 업체)을 상대로 돌입한 올해 임단협 파업이 처음부터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하면서 내부 갈등이 빚어졌고 이에 따라 집행부가 지도력을 상실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관계자는 "파업 과정의 의사 소통에서 문제를 겪은 집행부의 지도력 상실 때문에 파업 철회와 집행부 사퇴가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에너지 등 울산석유화학 공장의 설비 시공과 보수 작업을 맡고 있는 조합원으로 구성된 울산플랜트노조는 2005년 설립 1년 만에 SK 울산공장의 정유탑을 불법 점거하는 등 무려 70여일간 파업을 벌이며 강성 노조로 자리매김했다.

울산플랜트노조는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4일 가장 먼저 파업에 들어가며 50여개 지역 전문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회사 경영여건과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임단협 공동 교섭에 나서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전문건설업체들은 예년과는 판이한 반응을 보였다. 50여개사 중 40여개사가 집단으로 교섭을 거부했다.

경기 침체로 발주사인 대형 석유화학 공장들이 잇달아 조업 단축에 들어가거나 설비 증설과 보수를 늦추면서 건설업체의 일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회사마다 일감이 부족한 데다 근로 조건과 매출 규모가 다른데도 노조는 무조건 사용자 측과 공동 교섭을 하자고 억지를 부리니 답답할 뿐"이라면서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철저히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가 지난 15일 임금협상안에 전격 합의하면서 울산플랜트노조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울산 조합원들은 포항 조합원들이 업무에 속속 복귀하자 플랜트건설노조의 '단일 노조 무용론'을 제기하며 지도부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조합원들의 불만이 노노 갈등 양상으로 번지자 집행부는 18일 총사퇴를 선언했다.

지역 노동 전문가들은 "노조 스스로가 현실을 외면한 강성 파업의 덫에 걸린 셈"이라며 "그동안 노조 눈치를 보며 파업에 참여해 온 조합원들 중심으로 강성 노조 탈퇴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