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가 최악의 국면에서 빠져 나오면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대폭 강해지는 '승자들의 잔치'가 시작되고 있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견뎌내지 못하고 추락하는 사이 최후의 생존자로 남은 기업들이 절대 강자로 등장,패한 자의 것까지 차지하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정상 궤도로 접어들수록 승자 독식 현상은 강해질 것이라며 이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투자 등 위기 이후를 대비한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세계 경제의 승자 독식 현상은 골드만삭스 JP모건 삼성전자 등 각 업종의 선두권 기업들이 최근 발표한 실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2분기에 34억4000만달러(주당 4.93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억5000만달러보다 67.8%나 증가한 것이자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치였던 주당 3.54달러를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JP모건도 전년 동기보다 36% 늘어난 27억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이들 투자은행의 깜짝 실적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이 일차적인 배경이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메릴린치와 리먼브러더스 등 다른 투자은행들이 경쟁 대열에서 탈락,반사 이익을 누린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명석 동양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7일 "골드만삭스의 실적은 대부분 채권 트레이딩과 같은 투자은행 업무에서 나왔다"며 "이는 경쟁자들이 줄면서 선두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승자 독식'‥현대차ㆍLG전자 '글로벌 톱' 도약 기회…中企엔 시련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도 승자 독식의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는 잠정치이긴 하지만 2분기 연결 기준으로 31조~33조원의 매출과 2조2000억~2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매출 28조6700억원,영업이익 4700억원에 그쳤던 1분기에 비해 매출은 3조원 이상,영업이익은 2조원 이상 증가했다.

연초 독일계 D램 업체인 키몬다가 파산하고 대만 반도체 업체들이 정부 자금을 지원받는 등 세계 반도체 업계가 요동치는 사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김장열 현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반도체 LCD 휴대폰 등 정보기술(IT)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승자 독식을 이미 이뤄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황 뒤에는 어김없이 승자독식이 나타난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스탠더드오일이 1900년 전후의 불황기를 거치면서 석유업계의 공룡이 됐고 GM이 대공황기인 1930년대 포드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았다.

인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세계 철강업계가 불황을 겪을 때마다 싸게 나온 매물을 인수해 세계 1위 철강기업으로 부상했고 노키아는 1980년대 말 북유럽 금융위기 때 기존의 문어발 전략을 접고 IT에 집중,휴대폰업계 1위로 부상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들이 다시 기울었지만 기업 간 경쟁력 차이가 불황과 위기를 계기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산업계의 판도가 재편된다는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제품만 사는 '가치소비 행태'가 나타나면서 시장의 수요가 품질과 브랜드 등에서 우위를 점한 기업으로 몰린다는 분석이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불황은 과잉공급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과잉공급이 해소되는 과정에서는 경쟁력이 약한 기업부터 순서대로 밀려나 일부 기업에 의한 시장 과점이 심해진다"고 말했다.

승자독식 현상은 앞으로 2~3년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위기를 맞으면 당장의 생존에 급급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못한다"며 "그렇게 되면 경기 회복기가 와도 준비가 안 돼 있어 선두업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산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승자독식 현상은 국내 기업에는 기회와 위기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세계 시장에서 선두권에 올라 있는 대기업들은 수혜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에 세계 5위권 반도체 업체 중 유일하게 전 분기보다 늘어난 영업이익을 올렸다. 휴대폰 부문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분기에 전 분기보다 매출을 늘렸다. 노키아(-39.4%)와 소니에릭슨(-79.5%)의 매출액이 대폭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현대차는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업체마저 모조리 적자를 내고 있는 가운데 2분기 4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대기업들은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LCD 8세대나 하이브리드카 등 차세대 시장에서 승자독식의 기회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구조조정을 이뤄내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위기 이후에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 정책이 경쟁력 강화보다 지원 위주로 이뤄져 온 데 이어 최근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도 미진하게 진행됐다"며 "시장 자율에 의한 퇴출과 진입이 이뤄지도록 해야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호/김현예/서정환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