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요 정부 부처들이 모여 있는 도쿄의 가스미카세키(관청가)는 요즘 개점 휴업 분위기다. 예년 같으면 내년도 예산 편성을 위한 사업계획과 세제개편안을 만드느라 분주할 때이지만 대부분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 "다음 달 30일로 예정된 총선거에서 정권이 바뀌면 어차피 정책 방향부터 다시 짜야 할텐데 지금 사업계획을 잡아 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재무성 A국장)라는 게 관리들의 얘기다.

아소 다로 총리가 내주 초 중의원 해산과 내달 30일 총선거를 예고하면서 정국이 불안정해지자 일본은 '정책 공백기'에 들어섰다. 새로운 정책 수립과 민감한 정책 실행은 올 스톱 상태다. 이 같은 정책공백은 경제공백을 초래해 그렇지 않아도 더딘 일본의 경기회복을 더욱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의회도 지난 14일 아소 총리에 대한 문책결의안이 참의원(상원)에서 가결되면서 사실상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민주당과 사회당 등 주요 야당들은 현재 계류 중인 모든 법안에 대해 집권여당인 자민당과의 원내 협상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이번 회기에서 논의 중이던 17개 법안들이 자동 폐기 처분될 위기에 놓였다. 이 법안들 가운데엔 비정규직 고용 처우 개선을 위한 일용직 파견근무 금지법,공무원 인사제도 및 연금 개혁 관련법 등 민생 관련 법안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15일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3.1%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전망대로라면 2008년(-3.3%)보다 성장률 하락폭이 더 커지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정국 불안이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5일 일본 경제 연례보고서에서 "일본 경제가 일부 안정화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세계경제 상황에 따라 내년에 재정과 통화 정책에서 추가 부양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IMF는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6%로 내다보고,디플레가 2011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날 올 1분기 회원국 무역 실적을 발표하면서 일본의 타격이 특히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수출은 지난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42.1% 줄었다. 일본종합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총선거때 각 당이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면 경제성장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