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2개월을 끌어온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측은 2007년 5월 첫 협상을 시작으로 8번의 공식협상, 11번의 통상장관회담, 13번의 수석대표협의 등 수많은 협의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댔다.

양측은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영국 방문시 타결 선언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이견을 좁혔지만 복병이었던 관세환급를 놓고 절충점을 찾지 못해 석달을 더 기다려야 했다.

◇ 막판 복병 등장한 `관세환급'


수입 원자재나 부품을 가공해 수출할 경우 관세를 되돌려주는 제도인 관세환급은 협상 초기부터 '딜 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로 꼽혔다.

우리측은 그동안 모든 FTA 협상에서 이를 인정받았다며 관세환급 허용을 요구했지만 EU측은 자신들이 주요국과 체결한 FTA에서는 관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맞섰다.

타결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3월말 8차 협상이 결렬된 것도 관세환급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관세환급을 인정하면 한국차가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라는 독일 등 자동차 강국의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또 EU 내부의 이견을 조율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EU측 사정도 감안됐다.

이후 양측은 매달 통상장관회담을 개최해 타협점을 모색했다.

EU측은 일정한 시한 이후 관세환급을 없애는 안, 환급비율을 낮추는 안 등을 제안했지만 "관세환급 없는 FTA는 의미가 없다"는 우리측 입장은 완고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말 파리에서 열린 통상장관회담은 협상의 무게추가 타결 쪽으로 기우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양측간 현행 관세환급 제도를 인정하되 일정한 보호장치를 두는 쪽으로 잠정합의가 이뤄진 것. 신중하기로 소문난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협상이 매우 많이 진전됐다"고 낙관론을 펼친 것도 이 무렵이었다.

EU측은 지난 10일 집행위 회의에서 수용가능하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 측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기류가 강해 최대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힐 수 있었다.

◇ 세계 최대경제권 EU와 힘겨루기..팽팽했던 협상과정

EU와의 FTA 추진은 200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정부는 'FTA 추진 로드맵'을 작성하면서 미국, 중국과 함께 EU를 중장기 FTA 추진 대상국으로 선정했다.

2006년 7월과 9월에 EU측과 예비협의를 가진 정부는 이듬해 5월1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협상 개시를 결정했고, 같은 달 6일 김현종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협상 시작을 선언했다.

2007년 5월 1차 협상에서 양측은 전체 품목의 95% 이상에 대한 관세철폐 원칙에 합의하고 양허협상을 위한 기본 틀을 마련,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 협상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

무역구제, 반덤핑, 분쟁해결, 금융 분야에서 상당한 합의를 도출했지만 상품양허안을 놓고 EU측이 실망감을 표시했고, 이어진 3차 협상에서도 주고받기식 협상 대신 논의방식만 합의하는 데 그쳤다.

특히 EU 측은 협상 내내 "한.미 FTA에서 미국이 얻어낸 수준은 기본으로 열고 추가 논의를 하자"는 이른바 `코러스 패리티'(KORUS Parity)를 내세우며 찬물을 끼얹었다.

같은 해 10월 4차 협상에서는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 ECE)의 자동차기술표준규정에 따라 제조된 자동차의 한국시장 진입을 허용해 달라는 EU 측 제의에 우리 측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 자동차 기술표준이 핵심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참여정부는 2008년 1월 6차 협상에서 지적재산권과 무역구제, 경쟁, 분쟁해결, 투명성 등 상당수 비핵심쟁점에 EU측과 합의했지만 여전히 모든 쟁점 해소를 해소하진 못해 타결을 차기정부로 넘겨야만 했다.

김한수 수석대표가 해외공관장으로 나가면서 바통을 이어 받은 이혜민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인 2008년 5월 재개된 7차 협상에서 EU 측과 연내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 고위급 회담으로 가지치기

이후 양측은 통상장관 또는 수석대표 등 고위급 회담을 통해 쟁점분야의 가지치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작년 8월 제1차 확대수석대표 협상에서 상품양허, 자동차 표준, 원산지 등 핵심쟁점을 일괄타결키로 하는데 합의했지만 승용차 관세 철폐시기나 법률.금융분야의 개방 범위가 걸림돌이었다.

12월 2차 확대수석대표회담에서는 자동차 관세를 배기량에 따라 3∼5년에 걸쳐 철폐키로 하는 등 주요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다.

이혜민 대표는 "이 회담을 기점으로 타결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통상장관회담에서 양측은 마지막 협상이 될 8차 협상을 3월 개최키로 합의하는 동시에 공산품 관세철폐, 서비스, 농산물 등 대부분 쟁점에 대해 잠정 합의에 도달, 타결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8차 협상에서도 처음부터 뇌관이었던 관세환급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 타결을 추후 과제로 넘겼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달 파리 통상장관회담을 기점으로 관세환급에 대한 절충안을 마련하는 진전을 봤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