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L사는 원자재 보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90㎡(약 27평) 규모의 창고를 짓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창고를 새로 만들 경우 기존에 허가받은 건축물 배치에 변화가 생기는 만큼 지구단위계획 변경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거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다. 결국 L사는 19개의 첨부서류와 도면을 준비해야 했다. 인허가 비용도 창고건축비(500만원)의 8배인 4000만원에 달했다.

# 30년이 넘은 사옥을 철거하고 신사옥을 건립하는 계획을 수립했던 D사는 토지의 용도규정 조항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보유한 토지 중 3분의 2는 상업지역,3분의 1은 주거지역으로 분류된다는 게 문제였다. D사는 보다 넓은 면적의 땅이 어떤 용도로 분류됐는지를 기준으로 건물을 신축하게 한 건축법을 토대로 지하 7층~지상 25층 규모(약 2만평)의 건물 신축계획을 마련했다. D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동일 필지라도 용도규정이 다르면 용적률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한 국토계획법이었다. 결국 이 회사는 신사옥 크기를 8000평 규모로 줄여야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8일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가 여전히 많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총 135건의 규제 개혁 과제를 공정거래,토지이용,금융,환경 · 안전 등 8개 부문으로 나눠 제시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애로를 호소하고 규제가 완화될 경우 곧바로 투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규제개혁 과제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대표적인 규제로 L사가 겪었던 지구단위계획구역 안에 건축된 공장부지의 신 · 증축 문제를 들었다. 이미 허가를 받은 지역인 만큼 소규모 창고나 사무실의 신 · 증축은 간단한 허가신청이나 신고로 대체해야 한다는 게 전경련 측 주장이다.

D사 사례처럼 규정이 법마다 다르게 돼 있어 혼란을 겪는 사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경련 관계자는 "동일 필지의 건축 행위에 대해 건축법과 국토계획법 규정이 다를 경우 기업들이 혼란을 초래하고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도 문제가 있다"며 "특히 요즘처럼 기업들의 투자가 절실한 시기에는 한시적으로라도 국토계획법의 용도기준을 건축법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5%로 지정돼 있는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의무비율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경련은 지난해 M&A(인수 · 합병)를 위해 500억원을 은행에서 대출하려다 이 기준에 막혀 대출을 거절당한 B사의 사례를 들었다. 이 회사는 결국 상환 기간도 짧고 금리도 높은 회사채를 발행해야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은행은 기업의 신용도와 사업성을 보고 기업에 대출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할 경우 대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이 밖에 대주주의 부채비율(300%)이 높거나,경미한 벌금형을 받으면 업종에 관계없이 금융업 진출을 제한하는 등의 신규 사업 진입 규제를 서둘러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주주가 6촌 또는 8촌 이내의 친척(특수관계인)인 회사의 주식 취득을 제한하는 규정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