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정책 '흔들'] 감세정책 쏟아내다 1년만에 증세로
감세(減稅)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나 한나라당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얘기는 세금을 더 걷는다는 내용이 많다. 감세는 세금부담을 줄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의 핵심이다. 재정건전성 악화와 중도(中道)강화론에 MB노믹스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흔들리는 감세기조

정부는 지난해 이후 경기확장정책으로 재정 건전성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세출 구조조정과 함께 세수확대를 위한 감세기조 전환을 신중히 검토 중이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증세로 돌아설 수 있는 형편도 아닌 까닭에 불요불급한 비과세 · 감면 축소나 비효율 에너지세 도입,술 · 담배와 같은 외부불경제 품목(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품목)에 대한 소비세 부과 등의 부분적인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청와대의 '중도노선'에다 표심에 민감한 여당의 속사정까지 겹치면서 방향이 흐트러졌다. 특히 10월 재보선과 내년 상반기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부자감세' 이미지를 벗기 위한 여당의 급박한 사정이 정부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세제정책이 정책적인 판단과 필요성이 아닌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에 의해 방향이 틀어져버린 셈이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재정부 장관 시절 상속 · 법인세율을 낮추지 않을 경우 자금의 해외이탈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구간별로 10~55%이던 것을 6~33%로 내리려 했다. 그러나 작년 국회에서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려 무산됐다. 윤증현 장관은 재추진에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 현행 법인세율 25%를 내년에 22%,2011년에 20%로 낮추고 소득세율도 구간별로 8~35%를 내년에 6~35%,2011년에 6~33%로 낮추려는 계획조차 제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전세보증금에 대해 임대소득세를 매기려는 움직임은 이중과세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예방책을 마련해 이중과세 우려를 없애겠다는 입장이지만 집주인이 전세금을 은행에 맡길 경우 이자에 세금을 내는데 거기에다가 임대소득세를 물리는 것은 옥상옥 세금이라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과세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증세 분위기에 힘입은 것이다.


◆갈지자(之) 세제정책

감세기조 퇴각과 함께 정부의 세제정책은 이미 방향을 잃어버렸다. 거의 매일 세제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일관된 기조는 보이지 않는다. 재정 악화 우려로 "더 이상 감세는 없다"고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파격적인 감세안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다른 한쪽에선 증세 방안들을 잇따라 흘리고 있다.

지난주 청와대 주도로 발표된 기업투자활성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신성장동력 분야 및 첨단기술 분야 연구개발(R&D) 투자액에 대해 최고 35%에 달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세액공제안을 발표했다. 이 정책으로 정부는 향후 3년간 수조원에 달하는 세수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세제정책 '흔들'] 감세정책 쏟아내다 1년만에 증세로
이 같은 부담 때문에 재정부 안에서조차 35%의 세액공제율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미 지난해 감세정책으로 2012년까지 세수감소 규모는 9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일정한 입장을 취하기가 매우 곤혹스런 입장이 돼버렸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세제개편안은 8월 말에 나온다. △중산층 및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강화 △세수감소에 대비한 추가 세원 확보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세제지원이 골격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세제개편이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저(低)세율 구조로의 전환'을 1순위로 정한 것과 비교하면 세제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뀐 셈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신성장동력 및 녹색산업 투자 등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추가적인 감세혜택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대신 중도강화 정책을 수용하는 내용들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기본방향에 비춰볼 때 일부 고소득층 및 대기업에 대한 증세로 세제정책이 되돌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종태/이태명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