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폴란드 북부 자유노조의 도시 그단스크.독일의 록 밴드 '스콜피언스' 콘서트에 모인 7만여명의 관중은 이들의 대히트곡 'Wind of Change(변화의 바람)'를 함께 부르며 공산주의 붕괴 20주년을 축하했다. 이 자리에는 폴란드 자유노조(Solidarity) 지도자 바웬사도 참석해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폴란드는 1989년 평화적인 체제 전환에 성공해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제 붕괴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는 당시 폴란드 공산정권과 협상해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폴란드는 10년 후인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으며,2004년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다.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다른 동구국가들은 초기단계에서 경제가 위축되고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폴란드는 예외적으로 심각한 소득불균형을 경험하지 않고 비교적 빠른 시일 내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한국은 폴란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시작한 1989년 외교관계를 맺었으며,2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기업들의 중요한 투자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폴란드의 면적은 31만㎢로 남한의 3배가 넘으며 인구는 3800만명이다. 헝가리,체코,벨라루스에 비해 인구와 경제규모가 크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EU 회원국으로서 유럽시장 진출에 용이하며,지리적으로도 서유럽과 러시아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 중부 유럽의 중심국가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에는 현재 10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인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무와바와 브로츠와프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건설했으며,투자액은 15억달러에 달하고 고용인원만 해도 1만3000명이 넘는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LCD TV,휴대전화 그리고 가전제품은 전량 유럽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생산분야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바르샤바에 대규모 연구센터를 세워 최신 기술을 갖춘 휴대전화와 통신망을 개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폴란드의 젊은 엔지니어 400여명과 한국 기술자들 100여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한국의 기업과 폴란드의 대학이 상호 협력관계를 구축한 모범적인 산학협력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나라의 협력은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1996년 이래 바르샤바대학 한국학과에 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으며,이 대학 한국학과를 졸업한 폴란드 젊은이들이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우리 정부는 양국간 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올해 바르샤바에 한국문화원을 개설할 계획이며,우리 문화를 폴란드에 소개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제 폴란드는 우리의 주요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는 유럽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으며,유럽연합 가입에 성공한 폴란드는 최근 경제협력 대상을 다변화하기 위해 아시아,특히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의 첨단기술과 폴란드의 우수한 노동력을 결합한다면 양국이 모범적인 협력모델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해는 폴란드로서는 공산주의에서 평화적으로 체제전환을 한 20주년이 되며,우리로서는 수교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20년 전 발틱해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을 타고 유럽의 중심인 폴란드와 동북아의 중심인 한국간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구축돼 유럽과 동북아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이준재 <駐폴란드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