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팀 =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 하락속도가 깜짝 놀랄 수준이다.

국민은 우리 저축률이 아직도 세계 최고수준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10년 전의 일일 뿐이다.

내년에는 비교 가능한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같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저축률이 상승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계속 저축률이 하락, 투자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깨질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비가 늘어서라기보다는 소득 감소로 인해 저축이 줄어든 양상이어서 글로벌 각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 선진국 대부분은 저축률 상승
5일 기획재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가계저축률은 지난해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도 계속 올랐으며 올해와 내년에는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일 전망이다.

한국을 포함한 OECD 주요 18개국의 평균 저축률은 2006년 가처분소득 대비 5.9%, 2007년 5.7%, 2008년 6.3%를 기록했으며 올해와 내년에는 각각 8.7%와 8.5%로 8%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요 선진국 소비자들이 향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소비를 늘리기보다 지갑을 닫고 노후 자금을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8개 주요국 가운데 올해 저축률은 스웨덴(15.6%)이 가장 높고 스페인(14.1%), 오스트리아(13.7%), 프랑스(13.2%), 독일(12.5%)이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한국은 5.1%로 일본(3.3%), 노르웨이(4.6%), 덴마크(5.0%)에 이어 저축률이 가장 낮을 것으로 예측됐다.

2010년에도 스웨덴의 저축률이 16.3%로 1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스페인(13.6%), 프랑스(13.4%), 오스트리아(13.0%), 독일(12.5%) 순으로 저축률이 높고, 한국은 3.2%로 일본과 공동 꼴찌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계기로 주요국들의 저축률이 올해와 내년에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8년 저축률이 1.8%에 불과했지만 올해 5.4%, 내년에 6.5%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어 영국은 저축률이 2008년 2.0%에서 올해와 내년에 5.1%를 기록하고, 덴마크는 2008년 0.6%에서 올해와 내년에 5.0%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됐다.

OECD 회원국 중 저축률이 가장 높은 스웨덴 또한 2008년 12.1%였으며 2009년 15.6%, 2010년 16.3%로 꾸준히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 1위에서 꼴찌로
70~80년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한참 발전하던 당시 저축률은 20%대를 넘나들면서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금모으기 운동이 펼쳐지던 당시에는 더욱 높아져 24.9%로 OECD국가들 중 1위였다.

높은 저축률은 투자로 이어지면서 수출에도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하고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저축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해외에서도 선진국으로 발전하면서 저축률이 떨어지는 현상은 자주 나타난다.

적절한 수준의 소비가 경제에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최근 대외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정책 목표를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저축률 1위를 달리던 나라가 급속히 꼴찌로 추락하는 것은 경제운용에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가구가 늘어 가계대출이 많아졌고 사교육 열풍이 지속되면서 교육비 지출 등 고정비용이 상당폭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예전에는 월급 등으로 소득이 생기면 일정부분을 무조건 저축하던 국민들이 이제는 부동산담보대출 등 빚이 많아져 이자내기가 벅찬데다 교육비 등 갑자기 줄일 수 없는 지출 때문에 저축을 예전만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저금리가 유지돼 저축의 매력이 줄었고 고용여건도 악화돼 실질소득이 감소한 점도 저축률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게 한다.

저축률이 낮아지면 투자가 줄고 생산이 둔화돼 수출과 경제성장이 위축될 수 있다.

어려운 계층이 늘면서 정부의 복지재정 부담도 늘어나며 금융 부실 가능성도 높아진다.

◇서민 고통 가중..수출에도 악영향
주목할 만한 대목은 국내 저축률 하락이 소비가 늘어서라기보다는 소득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더욱이 소득 감소는 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진다.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계는 지난 1분기에 명목소득(-5.1%)과 실질소득(-8.7%)이 동시에 감소한 유일한 계층이었다.

2분위도 명목소득(0.7%)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실질소득(-3.1%)이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가처분소득(소득-비소비지출)은 1분위(-10.6%)와 2분위(-0.4%) 모두 감소했다.

1분위는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빼면 월 50만7천원 적자였고 2분위는 6만4천900원 흑자에 그쳤다.

저축은커녕 빚을 내거나 그나마 모아뒀던 돈을 찾아 써야 하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여윳돈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고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와는 반대로 주요국가들의 저축률 상승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저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소비를 줄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계저축률은 지난 5월 6.9%로 1993년 이후 15년여만에 최고였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의 소비가 줄어들면 경기 회복 시기가 늦어질 수 있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게는 악영향이 불가피한 것이다.

자칫 바닥이 길어지면서 U자형 회복마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우리 수출의 회복이 느려지면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는 속도가 더뎌지고 투자 침체도 장기화되면서 고용시장의 위축도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sat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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