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욕, 타성, 착각, 자아도취'

삼성경제연구소가 2일 보고서에서 경영실패의 주범이라고 꼽은 조직 내부 요인들이다. 연구소는 영문 이니셜을 이어붙여 이를 'AIDS'라고 표현했다.

A는 Avarice (과욕), I는 Inertia(타성), D는 Delusion(착각), S는 Self absorption(자아도취)를 의미한다.

'과욕'에 대해서는 사업 확장에 대한 의욕만 넘치는 기업들이 가용자원과 경쟁우위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사업다각화를 감행해 시너지 창출에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의 경우 1970~80년대 저가 상품을 판매하고 시계에서 향수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에 라이선스를 준 결과 수익성이 떨어지고 브랜드 가치마저 실추됐다는 것이다.

과거에 안주하는 '타성'으로 인한 대표적 실패 사례는 모토로라의 위성전화 '이리듐'이 꼽혔다. 이리듐은 1998년 모토로라 주도로 47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50억달러를 투자한 위성전화 서비스다.하지만 단말기 교체가 필요없고 요금도 이리듐의 절반 수준인 로밍서비스가 나오면서 44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모토로라가 로밍 기술의 대체 가능성을 느꼈으면서도 '스타텍' 성공 신화에 취해 있어 이리듐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못했다고 풀이했다. 모토로라는 2001년 보잉사로부터 단돈 2500만달러를 받고 이리듐을 매각해 무려 94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착각'은 신제품이 고객 인식까지 변화시킬 것이란 안일한 판단에서 비롯한다는 설명이다. 펩시의 경우 에비앙 같은 투명 음료가 인기를 끌자 무색 '크리스털 펩시'를 개발했으나 '갈색이 아닌 콜라는 맛과 청량감이 떨어질 것'이란 소비자의 선입견을 깨지 못해 1년만에 생산을 중단했다.

코카콜라 역시 1985년 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뉴코크'를 내놨지만 출시 석달만에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쳐 시장에서 철수하고 기존 콜라를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산했다. 석달동안 코카콜라에 걸려온 항의 전화와 협박 편지는 40만통에 달했다.

소비자들은 맛 뿐 아니라 코카콜라의 상징성, 브랜드에 대한 애정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제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라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자아도취'는 제품 혁신을 선도하려는 생각에 도취돼 소비자 여건이나 시장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고 과속 경영을 감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이 필기 인식 기능을 구현해 내놓은 세계 최초의 PDA '뉴튼'은 불분명한 고객층과 복잡한 사용법, 불편한 휴대성 등으로 고전했다.보쉬는 12종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커피메이커 '벤베누트B30'을 개발했으나 복잡한 작동법 때문에 가정용으로 보급하는데 실패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연구소는 "실패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기업의 경영자산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서 "도전에 수반되는 실패를 장려하고 용인하는 조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혼다는 매년 가장 처절한 실패를 한 연구원을 뽑아서 약 100만엔을 지급하는 '올해의 실패왕' 제도를 운영한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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