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27층 박삼구 회장 집무실엔 적막감이 흘렀다. 외부 손님은 물론 내부 인사들의 출입도 통제됐다. 핵심 인사 한두 명만 어쩌다 드나들 뿐 박 회장은 계속 혼자였다. 이윽고 저녁 무렵.박 회장은 집무실을 나섰다. 석 달 동안 고민해온 대우건설 처리에 대한 결론을 내린 직후였다. 결론은 대우건설을 매각해 근원적인 문제를 털어버리자는 것이었다.

다음 날인 26일 박 회장은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등 경영진에게 결단을 통보했다. 당황해하는 경영진들에게 "힘을 내자"고 위로했다. "올해 창사 63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는 그동안 외환위기 등 수없는 어려움을 견뎌왔다"며 "기업 경영도 인생살이와 마찬가지로 영광과 어려움은 항상 교차한다"고 다독이기도 했다. "지금은 어렵지만 힘을 합쳐 슬기롭게 극복하자"고도 했다.

이틀 뒤인 28일 오전 9시 박 회장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 일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오후 1시30분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매각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박 회장이 귀국하던 지난달 30일.기자들이 심경을 물었지만 박 회장은 담담한 미소만 머금었다. 그런 표정에는 '다시 해낼 수 있다'는 다짐과 자신감이 숨어 있었다.

'승부사' 박 회장의 결단과 위기극복을 위한 도전은 3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1979년 석유파동 당시 금호실업 부사장이던 그는 고금리,유가 상승 등으로 수출이 어려움을 겪자 엔화 강세 지역인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해 위기를 넘겼다. 아시아나항공 사장 시절이던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공적자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런 노력은 외환위기 이후 금호아시아나를 급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이런 박 회장이다보니 그룹 직원들은 이번에도 기대를 건다. 시장의 평가도 괜찮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조차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물론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기업경영은 인생살이와 같다"는 기업관을 볼 때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어쩌면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장창민 산업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