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를 대체할 전기차 스테이션(충전소),소비자의 전기사용 선택권을 넓혀주는 스마트 그리드,태양광으로 작동하는 고효율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로 난방되는 전기에너지 주택….'

한국전력이 1일 창립 48주년을 맞아 마련한 '2020 뉴비전 및 중장기전략'은 이 같은 '그린 유토피아'의 비전을 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이 전략에는 2020년까지 글로벌 톱5의 전력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녹색기술 투자계획과 로드맵이 자세하게 포함돼 있다. 한전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청정에너지 경제 구현을 위해 녹색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지난해 32조원을 기록했던 매출 규모를 2020년에는 85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쌍수 한전 사장은 "2050년이 되면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며 "원자력발전과 신 · 재생에너지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 구축이 한전이 구상하고 있는 미래 청사진"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단순히 전기요금을 거둬 투자를 하고 수익을 내는 수동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한국형 원전수출 △해외발전소 건설 △녹색에너지 기술개발 등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신사업 전략 마련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지능형 전력망 구축 주도

지능형 전력망으로 불리는 스마트 그리드는 한전이 계획하고 있는 그린 유토피아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인프라다. 스마트 그리드는 전기를 공급하는 기존 전력망에 첨단 IT(정보기술)를 더한 신(新) 네트워크로,전력 공급자와 소비자 간 실시간 정보교환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반 소비자들과 전기차 운전자들은 각 가정과 충전소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주가처럼 시간대별로 변하는 전기 사용요금을 체크,전기요금이 가장 싼 시간대에 전기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전은 내년에 제주 실증단지(테스트베드) 등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11년부터 수익을 창출해 2015년에는 9000억원,2020년에는 3조5000억원의 매출을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서 거둔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2013년까지 관련 연구개발(R&D) 투자비로 81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스마트 그리드 사업 전담인력도 현재 12명에서 내년에는 43명으로 늘어난다. 한전은 스마트 그리드 분야 주도권 선점을 위해 제주 테스트베드의 운영 시 IT장비와 컨설팅,신 · 재생에너지,통신 등 다양한 분야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예정이다.

◆녹색기술 투자비 1조6000억원까지 확대

녹색기술 개발은 미래 신성장 전략의 또 다른 한 축이다. 한전은 올해 초 석탄가스화 복합발전(IGCC),발전용 연료전지,투명 태양전지 등 중점 개발분야를 선정하고 2020년까지 녹색기술 개발 투자비를 1조6216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작년 R&D 투자비(2326억원)보다 7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녹색기술 매출도 지난해 200억원에서 2020년에는 14조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한전과 5개 발전자회사는 풍력 태양광 등 신 · 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을 확충하기 위해 정부와 '신 · 재생에너지 자발적 공급 협약(RPA)'을 체결했다. 2006~2008년 1차로 5201억원을 투자해 288㎿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했다. 올해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진행되는 2차 RPA 규모는 811㎿로 대폭 늘어났다.

한전은 2012년 정부의 '신 · 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 도입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신 ·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할 예정이다. RPS는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 ·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로 할당 비율은 2012년 3%에서 2020년께 10%로 높아질 전망이다.

탄소배출권(CDM) 사업도 적극 추진 중이다. 한전은 중국 6개 지역에서 추진 중인 9개의 풍력발전 사업이 모두 유엔 CDM 사업 항목에 공식 등록되면서 연간 28만t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고 있다. 한전 측은 중국 내 풍력발전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탄소배출권 규모를 73만t까지 늘리고 탄소배출권 판매수익도 연간 900만달러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국형 원전' 수출 도전

한전은 '한국형 원전'의 성공 시대를 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요르단 등지에서 한국형 원전 첫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등 강대국의 전유물로 통했던 세계 원전시장에 다크호스로 떠오른 것.

UAE는 2017년까지 5000~6000㎿ 규모의 원전을 지을 계획이다. 한국형 원전 3~4기에 해당한다. 사업비는 140억~160억달러로 추산된다. UAE는 7월까지 두 곳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이 가운데 한 곳을 9월께 최종사업자로 확정할 계획이다.

요르단은 2000~3000㎿ 규모의 원전을 건설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한전과 프랑스 아레바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형 원전이 1400㎿급인 만큼 1~2기를 지어야 한다. 요르단이 한 곳과 수의계약을 할지,경쟁입찰에 부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한국형 원전 2기의 수출은 쏘나타 승용차 32만대 혹은 30만t급 대형 유조선 40척 수출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