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 달 동안 전 세계 선박 시장에 단 한 척의 발주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국 조선업체가 강점을 갖고 있는 대형 선박 시장의 침체가 두드러지면서 세계 2위인 중국과의 수주잔량 격차도 크게 줄어 들었다. 영국의 조선 · 해양 시황 조사기관인 클락슨은 26일 월간 리포트를 통해 "전 세계 주요 조선업체 가운데 지난 5월 중 정상적인 선박 수주를 따낸 업체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월간 기준으로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제로'를 기록한 것은 클락슨이 집계를 시작한 1996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작년 8월 361척,641만CGT(보정총톤수)로 정점을 찍은 뒤 급감했다. 작년 10월엔 170만CGT(103척)로 떨어졌고 올해 4월엔 18만t(23척)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선박 금융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선주들이 뱃값을 치를 돈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상대적으로 한국 조선업체의 타격이 컸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빅3' 조선업체는 작년 8월 이후 LNG(액화천연가스)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대형 상선 주문을 단 한 건도 따내지 못하고 있다.

신규 수주가 끊어지면서 남아있는 일감을 나타내는 수주잔량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5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6080만CGT로 1년 전(6819만CGT)에 비해 10.8% 감소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5670만CGT에서 5740만CGT로 오히려 수주 잔량이 늘었다. 배에 싣는 화물의 무게(DWT · 재화중량톤수)를 기준으로 한 수주잔량은 이미 중국(1억9960만DWT)이 한국(1억9280만DWT)을 앞질렀다. 한국이 짓는 LNG선 등에 비해 중국의 벌크선에 들어가는 화물이 상대적으로 무겁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체는 생산성이 높아 빨리 배를 짓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주 잔량 감소세가 가파르다"며 "중국은 벌크선 위주로 꾸준히 주문을 따내고 있어 수주잔량 기준으로는 조만간 중국이 세계 1위에 오를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