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이후 3대에 걸쳐 끈끈하게 이어져 온 구(具)씨 가문 LG그룹과 허(許)씨 가문 GS그룹의 동업 역사는 계속될 것인가?
57년간 지속했던 구-허씨 가문의 동업 역사는 2004년 7월1일 GS가 계열에서 분리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두 그룹은 이전의 동업정신을 바탕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사업영역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2005년 2월 GS의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LG그룹과의 57년간 동업정신을 살려 긴밀히 협력하고, LG의 사업영역에는 진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허 회장은 계열 분리 후 1년여 만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LG 및 LS그룹과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하고 만일 동일 업종에 뛰어들게 되면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치겠다"고 강조했다.

문서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LG와 GS 사이에 맺어진 '신사협정'은 GS가 LG에서 계열 분리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5월 GS그룹이 종합상사인 ㈜쌍용을 인수하고, LG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이 신사협정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지만 양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GS그룹 관계자는 "5월 인수한 ㈜쌍용의 주요 취급품목은 철강과 시멘트이고, 향후 에너지, 유통, 건설 등 기존 GS의 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나갈 계획"이라며 "LG의 주력인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LG상사와는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LG그룹도 GS그룹의 사업 영역에 진출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강하게 손사래를 치고 있다.

주요 사업 영역이 전자와 화학, 통신으로 틀이 갖춰졌고, 세계 경제 전망이 어느 때보다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사업을 다각화할 수도 없다는 게 LG그룹의 설명이다.

특히 LG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설에 대해 '건설업은 노(NO)'라는 사업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건설업계에서 그런 얘기가 나도는 모양인데 사업 포트폴리오가 정해진 마당에 새로 건설업에 진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LG그룹 계열사 중에 옛 LG건설 인력이 남아 있는 회사도 있지만, LG그룹은 이에 대해 엔지니어링 분야만 맡고 있고 건설업에 필요한 설계, 시공 인력은 없어서 건설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세간의 분석은 말이 안 된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GS그룹의 주력 사업인 유통, 건설이 현금 유동성을 높이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LG그룹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씨, 허씨의 관계가 세대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지금보다는 느슨해지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사업 영역을 존중하는 암묵적인 약속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인회 창업회장과 `만석꾼' 허만정 씨의 인연으로 출발한 구-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는 2세대인 구자경 LG명예회장과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 3세대인 구본무 LG회장과 허창수 GS 회장으로 이어져 왔다.

두 집안이 60년 가까이 동업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국제 경영학계에서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종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경영사학회 연구총서에서 "LG의 인화정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고의로 잘못을 해도 정으로 감싸는 어정쩡한 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상호합의한 원칙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엄정한 책임의식이 전제돼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이광철 기자 ckchung@yna.co.kr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