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서 '더블 딥'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뉴욕 증시가 곤두박질쳤다.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아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9월께 미 경기가 바닥을 칠 것으로 전망하는 등 미 경기가 바닥을 통과하고 있거나 조만간 바닥을 형성할 것이란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경기 회복 속도와 회복의 진정성 여부다. 전문가들은 금리와 국제유가가 뛰고 세계 각국의 재정 투입 여력이 소진되면서 세계 경기가 더블 딥을 보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증시가 올 들어 이미 상당폭 올랐으며 인플레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출구 전략(exit strategy)'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투자심리에 악재다.


◆세계은행 '성장률 추락'경고에 요동

경제지표가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경기회복 기대감을 반영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폭됐고 시중 실세금리가 속등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6월 초 한때 연 4% 수준까지 급등했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뜀박질했다. 여기에 최근 열린 주요 8개국(G8) 재무장관 회의에서 경기부양책 출구전략 논의가 벌어지면서 회복기미를 보이던 미 경제가 다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일시 회복 후 다시 고꾸라질 것이란 '더블 딥' 공포가 뉴욕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주식시장에 충격을 줬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22일 CNBC방송에 나와 최근 상승하는 유가와 금리,재정적자가 경기회복에 부담으로 작용해 미국 경제가 'W자' 형태의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제유가가 연말까지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세계은행의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도 저점을 형성한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인식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날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월의 -1.75%에서 -2.9%로 낮췄다.

경기회복 신중론자들은 늘어나는 미 실업률과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등에 비춰볼 때 소비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백악관은 5월 9.4%였던 실업률이 앞으로 2개월 내 10%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23일 발표된 미국의 5월 기존주택 판매도 예상치(481만채,연율 기준)를 밑도는 477만채로 전월 대비 2.4%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 가계가 잃었던 부를 되찾는 데 15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게다가 경기회복시 뒤따를 수 있는 물가상승에 대비한 유동성 회수정책의 필요성이 최근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거론되고 있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과거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을 예로 들며 "긴축정책으로 너무 빨리 선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FOMC 회의 결과에 관심 집중

뉴욕 증시를 비롯해 글로벌 증시가 동반 급락한 것은 그동안 너무 급하게 올랐기 때문이란 진단도 나온다. 투자자문사 주리카밀스&케이퍼의 칼 오 밀스 대표는 "그동안 증시가 너무 빨리,많이 올랐다"며 "지금의 경기회복세로는 현금화할 수 없는 수표를 발행한 셈"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관심은 23~24일 열리는 FRB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어떤 경제 평가와 조치가 나올지에 쏠리고 있다. FRB는 시장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간을 못박아 사실상 제로인 현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 연말에 금리를 올릴 것이란 관측을 불식시키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다. FRB의 통화정책이 긴축 우려를 잠재울지 여부에 따라 세계 증시의 흐름이 결정될 전망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