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액권인 5만원짜리 지폐가 23일부터 시중에 유통된다.
지난 1973년부터 지금까지 현금 중 최고액권으로 사용되던 1만원권은 36년만에 최고액권의 자리를 5만원권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러나 고액권이 나오면서 그만큼 사용금액 단위가 높아져 물가도 덩달아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같은 부피로 많은 액수를 담을 수 있어 '뇌물'을 주고받기도 편리해진 게 아니냐는 걱정도 제기되고 있다.

◆신사임당이 세상을 바꾼다
한국은행은 23일 오전 6시부터 금융기관 본점과 결제모점(한은과 입출금 거래하는 지점)에 5만원권을 공급한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오전 9시부터 점포의 문을 열면서 5만원권을 고객들에게 공급한다"고 설명하고 "현금자동지급기에서 5만원권을 인출하는 것도 오전 9시 이후부터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사임당 초상이 들어가는 5만원권은 가로 154㎜, 세로 68㎜로 새 1만원권보다 가로는 6㎜가 크고, 세로는 같다.색상은 황색 계열이다.

한은도 발권국과 지역본부에서 5만원권을 대상으로 1인당 20장(100만원) 한도로 교환해줄 예정이다.
5만원권의 빠른 번호(AA*******A) 100만장 가운데 1∼100번은 한은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된다.또 101∼20000번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경매를 실시한다.

한은 관계자는 "빠른 번호는 7자리 숫자앞에 AA가, 숫자 끝에 A가 있는 지폐"라면서 "경매물량 1만9900장은 2007년 1000원권과 1만원권 발행당시(9900장)의 2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20001∼1000000번은 시중은행, 특수은행(산업·수출입은행 제외), 지방은행 본점, 우정사업본부에 무작위로 공급한다.

◆경제 규모만큼 최고액권도 업그레이드
지난 2006년 5만원과 10만원권 등 고액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우리나라 경제 그만큼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비록 고액권 발행 추진 중에 10만원권 발행은 유보됐지만 5만원권은 2년 6개월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1인당 소득과 물가 등이 1만원권이 처음 나온 지난 1973년보더 각각 110배, 14배가 이상 증가하면서 고액권의 필요성일 대두되기 시작했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10만원 자기앞수표의 사용이 많아지면서 수표 발행·지급·전산처리 등에서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도 고액권 발행의 주요 요인이 됐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 발행·지급·전산처리에만 연 2800억원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자기앞 수표 전체는 물론 1만원권의 약 40%를 5만원권이 대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기가 저점상태인 지금이 5만원권 발행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을 희석시킬 수 있는 때"라며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발행 비용뿐 아니라 현금지급기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상승·뇌물 용이 등 부작용 우려도
시점상 고액권 발행에 적기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 고액권은 돈 액수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실제로 유통업계는 고액권 발행으로 소비자들 씀씀이가 커지길 기대하며 '전품목 5만원 균일가전', '5만원 베스트 상품전'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기획상품 가격은 '1만9000원' '2만9000원, '3만9000원'이 주를 이루다가 5만원권 발행을 앞두고 '4만90000원' '9만9000원'으로 바뀌고 있다.

결혼 축의금, 돌 등 경조사 비용도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500유로(현재 환율로 88만원)고액권을 발행했지만, 물가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현금 보관이나 휴대가 간편해져 뇌물이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뇌물은 추적이 불가능한 현금이 주로 이용되는데 고액권인 5만원권은 007가방에 5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또 5만원권의 색깔이 새로 발행된 5000원권과 비슷해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음식점이나 편의점은 물론 택시나 버스 기사들은 5만원권을 낸 고객들을 위한 거스름돈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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