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17개 신성장동력 산업 전부를 추진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

피터 드러커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헤르만 지몬 SKP(Simon-Kucher & Partners) 대표 겸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지난 15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의 대담에서 이처럼 조언했다.

지몬 교수는 "기후변화와 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물과 영양(nutrition) 분야가 향후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꼽았다. 곽 위원장은 "히든 챔피언이 되려면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담은 장영철 경희대 경영대 교수 겸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세계경제 회복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데요. 언제쯤 본격 회복될 것으로 보십니까.

▼지몬 교수=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경제가 언제 좋아질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 것입니다. 다만 지역별로 봤을 때 유럽에 비해 아시아와 미국이 좀 더 빠른 경기회복을 보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시아와 미국은 경기선행지수가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유럽은 여전히 하락세입니다.

▼곽 위원장=경제학자는 기상학자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둘 다 미래를 예측하는 직업이지만 모두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현재 상황이 바닥인지,하락기인지,상승기인지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주요국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세계경제의 본격 회복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경제에 대해 OECD 등이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회복의 강도가 약하고 국제유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향후 경기를 낙관하기는 이르다고 봅니다.

▼사회=영국발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몬 교수=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죠.그러나 이보다도 글로벌 공공부채에서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선 재정적자 우려 때문에 최근 장기 국채 금리가 크게 높아졌죠.인플레이션도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의 경우 1년 혹은 2년,공공부채는 3~5년 후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에서 신성장동력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곽 위원장=한국 정부는 녹색기술 첨단융합 고부가서비스 등 3대 분야에서 17개 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하는 신성장동력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향후 5년간 24조5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10~20년 이후의 산업 청사진으로 국가 전략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먼저 극복하고 세계경제가 회복될 때 가장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새 성장동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또 산업의 융복합화 기후변화 대응 등 시대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서비스업 육성을 통해선 고용을 창출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지몬 교수=말씀하신 17개 부문에 대한 육성 프로그램은 인상적입니다. 문제는 과연 한국이나 독일과 같은 중간 규모 국가가 이 모든 것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점입니다. 모든 부문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어떤 분야에선 리더가 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신경써야 하는 부문을 줄이면 더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독일을 예로 들면 모든 분야에서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고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는 편입니다. 독일은 풍력발전과 태양력발전에 좀 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측면에서 보면 미래 유망한 분야는 물과 영양 쪽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영양 분야는 생태와 기후 변화 등으로 향후 관심이 높아질 것입니다.

▼사회=녹색산업이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의견이 많고 각국 정부도 육성에 애쓰는 것 같습니다.

▼곽 위원장=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문제가 미래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결정짓는 핵심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녹색성장을 국정 아젠다로 설정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고유의 원천기술과 시장 장악력을 가질 수 있다면 2013년께는 저탄소 녹색성장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란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기존 주요산업을 지켜나가기 위해 국제적인 기후변화 논의에 동참할 때 신중하고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측면도 있습니다.

▼지몬 교수=한국은 기술경쟁력이 높습니다. 많은 외국기업들이 한국의 벤처기업들과 함께 투자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기업들을 격려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녹색산업은 전반적으로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기술이 발전할지 알기가 힘듭니다. 앞으로 20년간 에너지 분야에서 엄청난 혁신이 나타날 것입니다.

녹색산업에 대한 기술 혁신은 주로 중소기업이나 젊은 CEO(최고경영자) 출신 회사가 맡게 될 것입니다. 대기업들은 시장이 작고 위험부담이 큰 곳에 투자를 잘 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이런 예를 많이 봤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델 등 혁신을 이룬 기업들은 다 젊은 CEO가 경영한 회사들입니다.

▼사회=친환경 자동차 분야로 논의를 좀 더 전개해 볼까요.

▼곽 위원장=현재 그린카시장은 일본과 미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독일과 한국 등이 기술경쟁에 본격 참여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한국도 플러그인 시스템 등 상용화되지 않은 그린카 기술을 제때 개발하고 선도적으로 보급하면 2012년이나 2013년께는 그린카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지몬 교수=자동차 분야에선 현재 하이브리드차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독보적인 미래자동차가 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독일 자동차회사들은 가솔린 자동차를 발전시키는 쪽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말씀하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적인 문제나 폭발방지 등 안전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선도국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일본이 앞장서고 있지만 15년 후에도 그럴까요. 저는 앞으로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번 어떤 것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다 이뤄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GM이나 크라이슬러가 아닌 또 다른 회사겠지요. 미국인들의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바꿀 것입니다.

초저가시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에선 얼마 전 타타자동차가 2000달러짜리 나노자동차를 만들었는데요. 독일 기술을 쓰지 않고 신기술을 쓴 것입니다. 현재 인도 중국으로부터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으며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들과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한국은 IT(정보기술)산업 강국인데요. 재도약을 위해서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곽 위원장=한국은 세계적 추세인 IT융합에 동참하기 위해 정부조직까지 바꿨습니다. 옛날 IT 부문을 담당하는 정보통신부를 다른 부처에 융합시켜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든 것이죠.IT를 산업의 전 부문에 접목시킨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을 육성하고 방송통신서비스를 활성화하며 시스템반도체 등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몬 교수=혁신을 이루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문화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부모들은 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새로운 일을 창조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기업보다는 안정돼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라고 할 것입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이나 한국은 좀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문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혀 다릅니다. 한국이나 독일만큼 대기업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자기사업을 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실패한 청년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격려하며 결국 나중엔 성공할 것이라고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사회=한국 정부의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은 어떻습니까.

▼곽 위원장=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산업의 비중은 한국이 아직도 낮은 편입니다. 미국의 경우 78%,일본이 69%,프랑스가 77%인 데 비해 한국은 58% 수준에 그칩니다. 서비스산업은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집중 육성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특히 금융서비스,문화 · 디지털콘텐츠 등 고부가서비스 육성이 시급합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습니다.

▼사회=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지몬 교수=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화돼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합니다. 독일은 상당히 다릅니다. 대기업이 항상 상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소기업의 경우라도 인터넷 등 통신수단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화를 위해선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일의 경우 정부가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는 히든 챔피언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미래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시장을 선정할 때 자국뿐 아니고 세계를 봐야 합니다.

▼곽 위원장=기업들은 정부에 금융지원,조세감면,연구개발 지원,인력 지원 등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든 챔피언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기업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다만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이나 해외시장 개척 등의 경우 정부 지원도 중요한 측면입니다.

정리=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