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안정펀드와 은행자본확충펀드 등 진동수 위원장 취임 후 금융위원회가 시장 안정을 위해 내놓은 대책이 개점휴업 상태다. 이들 펀드는 당초 계획 대비 집행률이 절반에 훨씬 못 미쳤음에도 시장 수요가 사라졌다. 은행의 외화 차입을 위해 정부가 제공키로 한 지급보증도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채권안정펀드의 집행 액수는 3조7500억원으로 당초 목표했던 10조원의 40%에도 못 미치고 있다. 1차로 조성한 5조원이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소진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펀드의 설치 목적이 소멸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시장에서 물량 대부분을 자체 소화하고 있다"며 "지금은 신용보증기금이 저신용 중소기업들을 위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만 매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0조원 규모로 조성키로 한 은행자본확충펀드는 지금까지 3조9500억원만 사용,집행률이 계획 대비 20%를 밑돌고 있다. 당초 금융위는 1차로 12조원을 지원하고 이달 중 2차 신청을 받을 계획이었으나 2차 지원 자체를 백지화했다. 금융위는 시중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평균 13%를 유지하고 있고 자체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시장에서 추가적인 자본 확충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창고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정부가 18개 시중은행과 체결한 외화채무 지급보증 양해각서(MOU) 역시 현재로선 무용지물이다. 은행들이 자체 신용으로 외화 조달을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지난 4월 지급보증 연장 동의안을 처리한 국회를 무안하게 할 정도다.

40조원 규모로 설치되는 구조조정기금 역시 올해 설정한 20조원의 한도를 채우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까지 확정된 사용 계획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채권 4조7000억원과 해운사 구조조정을 위한 선박 매입에 1조원 등 5조7000억원이다. 구조조정 대기업의 부실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9조원을 배정했지만 이 역시 '예비용'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하반기에 자체적으로 배드뱅크를 설립해 부실 채권을 처리하고 사모펀드(PEF)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통해 기업들의 구조조정 자산을 상당부분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4월 임시국회에서 설치 근거를 마련한 금융안정기금은 조성될 가능성이 물 건너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금융당국의 과잉 대책으로 금융회사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시장 상황을 잘못 판단해 과잉 대책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시장 예측을 압도하는 수준의 대책을 내놓음으로써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을 제압하지 못하면 정부가 제압당한다"며 "정부가 조성한 펀드는 한도만 정해 놓고 금융회사의 요청 시 지급하는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이뤄져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