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은 매우 민감한 이슈다.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원가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서민들의 생활고를 우려해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농업이나 제조업 등 산업 지원 측면의 정책적 배려가 포함된 데다 누진제 등 형평성마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정부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는 문제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4일 발표한 '고유가 대응을 위한 에너지 수요관리대책'은 이 같은 복잡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예컨대 전기요금 가격 결정 방식을 연료비에 연동하도록 개선한다는 내용이 대책에 포함됐지만 정작 보도자료에는 연동제 도입 시기가 명시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을 모토로 내건 정부는 원가보다 낮은 요금이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요금체계 개편이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당장 요금 인상 이뤄질까

에너지 수요관리대책이 발표된 이후 정책 당국자들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관련한 질문에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입을 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연료비 연동제 도입 △용도별 요금체계 축소 △주택용 누진제 완화 등이 핵심인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영학 지경부 2차관도 당시 브리핑에서 "종합적인 전기요금 체계 개선 계획을 이달 중 수립해 연차적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오일쇼크' 직후인 1973년 마련돼 30여년간 골격을 유지해 온 전기요금 체계는 상당부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당면한 현안은 전기요금 인상 시기와 폭이다. 지난해 2조9500억원의 적자를 낸 한국전력은 올해 연료비 변동폭 등을 감안하더라도 17.7%의 인상 요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올 1분기에 약 9000억원의 손실을 본 상황에서 자구 노력을 하더라도 최소 9%는 인상돼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지경부를 중심으로 정부 내에서도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물가 부담을 우려해 한전의 인상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가격 인상은 왜곡이 심한 심야전력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심야전력은 낮에 집중되는 전력 부하를 줄여 수요를 분산시키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낮은 요금으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전의 적자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전은 지난해 심야전력에서만 5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


◆누진제 가정요금도 개편 대상

전력요금 차이가 사용량에 따라 최대 11.7배에 이르는 주택용 누진제 역시 개편 대상이다. 정부는 6단계로 돼 있는 누진 단계를 3~4단계로 축소하고 최고 · 최저 단계의 적용 요금 차이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누진제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주택용 전기요금에 도입됐다. 여유 계층에 더 많은 요금을 부과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교차 보조와 에너지 과소비 억제가 목적이었다. 이후 소폭의 누진율 조정은 있었지만 그 뼈대는 30여년간 유지됐다.

일반주택에 적용되는 저압 전력요금의 경우 6단계 가운데 최저 단계인 100㎾h까지는 ㎾h당 55.10원이 부과되고 최고인 500㎾h를 초과할 경우 643.90원이 적용된다. 예컨대 월 150㎾h를 사용한 가정의 요금은 1만2020원인 데 비해 550㎾h를 쓴 가정엔 13만9165원이 부과되고 있다. 사용한 전력량 차이가 3.7배에 불과한데도 요금 격차는 11.6배에 이르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대부분 공급되는 고압 주택용 요금도 최저 단계 적용 요금(1~100㎾h · 52.40원)과 최고 단계 적용 요금(500㎾h 초과 · 521.70원) 격차가 10배에 육박한다.

정부가 누진제 완화를 검토하는 이유는 최고 · 최저 요금의 격차가 과도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선진국들의 누진 단계는 3단계 내외에 불과하다. 대부분 국가의 경우 최고 · 최저 요금 배율이 2배를 넘지 않는다. 한국과 요금체계가 비슷하고 누진폭이 강한 대만조차 최고 · 최저 요금 배율이 2.4배에 불과하다.

한국전력은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정=저소득층'이라는 과거의 등식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생활 수준이 높아져 전력 사용량이 소득에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월 100㎾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곳의 80% 정도는 저소득층이 아닌 1인 가구나 맞벌이 가정"이라며 "요금에 차등을 두기보다는 저소득층을 위한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설명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