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계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막대한 시장을 무기로 대만과 일본의 기술을 끌어들여 첨단 LCD 시장에서도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게 목표다.

제일재경일보는 10일 징둥팡(BOE)이 300억위안(약 5조4000억원)을 투자,8세대 LCD 패널을 생산하려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평가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6세대 패널 생산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120억위안(약 2조1600억원)의 유상증자를 마친 징둥팡은 증자를 끝내자마자 8세대 투자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징둥팡은 앞서 지난 4월 중국 기업으론 처음으로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6세대 패널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징둥팡은 한국 하이닉스반도체의 LCD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기술을 이전받고 나서 철수해 비난을 받았던 기업으로 8세대 투자에는 대만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자국 기업의 중국 내 LCD 조립생산만 허용하고 있는 대만은 양안(중국과 대만) 협력 분위기에 따라 중국 내에서 8세대 패널 일관 생산체제까지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10대 산업육성책의 하나로 발표한 '전자산업진흥책'에서 양안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취약한 LCD 기술에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이를 위해 대만업체로부터 연말까지 44억달러어치의 LCD 패널을 구매하기로 하는 등 구매력을 이용해 기술을 이전받는 이른바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 · 시장과 기술을 맞바꿈)'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하이얼 등 9개 가전업체를 이끌고 대만을 방문한 바이웨이민 중국 비디오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중국 내 8세대 생산을 위해 대만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양안 간 LCD패널 표준을 만들어 차세대 LCD패널 생산에 공동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NEC와 합작해 상하이에서 5세대 LCD를 생산하고 있는 상하이광뎬(SVA)도 일본 샤프와 공동으로 6세대와 8세대 패널 생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양사는 합작사를 세우는 방안과 샤프의 생산설비를 이전받는 방안을 놓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샤프의 가타야마 미키오 사장은 "중국에서 LCD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샤프가 LCD 생산 첫 해외기지로 중국을 택한 것은 글로벌 경기 위축 속에서도 중국 내 LCD TV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조립라인만 가동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도 LCD 핵심 라인을 포함한 일관 생산체제를 갖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현재 징둥팡 상하이광뎬 롱텅 톈마 차이홍 등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LCD 생산라인 투자 규모가 1000억위안(약 18조원)을 웃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업체들이 기술 우위에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급성장하는 중국 내수시장을 현지 토종기업에 내줘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