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회복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아시아 국가는 나라 빚이 급증하면서 10년 전 외환위기를 또다시 겪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수출 부진에 따른 경기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서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불어나는 '부채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정적자가 경제회복 발목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보고서를 인용,아시아 일부 국가가 막대한 재정적자로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S&P는 "최근 경제지표들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아시아 · 태평양 지역에서 최악의 상황은 끝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중 · 장기적으로 재정 악화가 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P는 재정적자를 이유로 인도와 대만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앞서 또 다른 신용평가사 피치도 재정적자 급증을 이유로 말레이시아의 국내 통화표시 장기 발행자등급(IDR)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다. 말레이시아는 작년 11월 19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서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올해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5%로 늘었다.

베트남은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9.3%인 84억달러로 느는 등 재정이 악화됨에 따라 동화 가치가 올 상반기 2% 떨어졌다. 필리핀은 재정적자에 대한 불안감으로 채권 수익률이 급등하고 있다. 정정 불안도 신용등급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S&P는 피지 스리랑카 태국의 경우 정치적 소요가 신용등급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

이 같은 재정난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 부진을 메우기 위해 아시아 각국 정부가 앞다퉈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한 데 따른 결과다. 세수 감소로 재정수입은 줄어드는데 오히려 정부 지출을 늘리면서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이 72%에 달하는 태국은 최근 저소득층 가정에 2000바트 규모의 구매쿠폰을 지급했고,수출 비중이 GDP의 61.1%에 달하는 베트남은 감세와 20만동 규모의 구매쿠폰 지급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수출 급감으로 올 1분기 -10.24% 역성장을 보인 대만도 향후 4년간 5000억대만달러를 인프라 투자에 쏟아붓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무리하게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는 건 자칫 재정만 악화시키고 경기 회복에는 실패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은탄 S&P 애널리스트는 "올해 재정적자가 큰 일부 아시아 국가 기업들의 부도가 1997~1998년 수준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