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대량 실직 사태가 일어난다면 누가 책임 질 겁니까. 비정규직법 적용 시기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싸움만 하면 기업만 피해를 입게 됩니다. "

모 대기업 인사노무 담당 임원은 정부와 여야가 기간제 2년 제한 적용 시기를 앞두고 혼란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 대해 불만을 털어놨다. 재계는 당초 계획대로 7월부터 비정규직법을 적용해 정부가 우려한 대로 대량 실직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이를 계기로 사용 기간을 폐지하거나 연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하는 등 비정규직법 적용에 따른 고용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태세를 갖춰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대기업보다 전체 계약직 근로자 328만명 중 81%(268만명)를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 100인 미만의 중소기업들이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 계약직 65만3000명을 뺀 202만7000명이 100인 미만 사업장에 고용돼 있다. 이 중 당장 7월1일 사용 기간 2년 제한이 적용되는 계약직은 70여만명에 달한다.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 근로자들이 1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거 몰려 있는 셈이다.

10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의 계약직은 32만7000명(10.0%),300인 이상 사업장은 30만1000명(9.2%)으로 100인 미만 사업장보다 적다. 이 가운데 7월에 2년 제한을 넘기는 계약직은 각각 10만명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유예안을 제시했고 여기에 맞서 야당과 노동계는 즉시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는 없지만 약간씩의 부담은 안고 있다. 야당과 노동계는 정부가 발표한 수치보다는 적더라도 어느 정도의 실직 대란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비정규직법이 노 · 사 · 정 대타협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데다 사회의 균형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을 치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나. 전문가들은 서로 한발짝씩 물러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300인 이상 대기업은 인력 운영에 불편함이 있더라도 현행법대로 7월부터 적용하고 △100인 이상~300인 미만은 1년 유예 △100인 미만은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기업부터 적용한 다음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제도를 수정하거나 보완하자는 복안이다. 양측에 명분을 주면서 법의 취지도 살리자는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