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기 회복 신호] 한국은 환율하락으로 인플레 가능성 낮아
한국에서도 경기 회복 조짐이 나타나자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그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풀어놓은 돈이 경기 회복 국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물가상승률이 안정돼 있는 데다 경기가 본격 회복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정책당국이 섣불리 유동성을 환수하거나 재정 투입 규모를 줄인다면 경기가 재차 곤두박질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생산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3% 하락했고 전월에 비해서도 0.8%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고 9일 발표했다.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2년 8월(-0.1%) 이후 처음이며 전월 대비 기준으로 하락한 것은 지난 1월(-0.3%) 이후 넉 달 만이다.

인플레이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하향 안정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로 1년8개월 만에 2%대로 낮아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2.7%는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 2.5~3.5%의 하단에 있는 것이며 연간 4~5% 수준의 잠재성장률과 비교해서도 상당히 낮은 것이다. 한은은 이에 대해 경기 침체에 따라 수요가 부진한 데다 환율이 하락해 물가가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은 경기 회복 기대감에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분기에 경제지표가 호전되면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바닥을 쳤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와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분기 성장률이 1~2%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통화량이 상당히 증가했지만 통화 유통 속도가 떨어져 있어 지금 당장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하지만 경제가 회복돼 통화 유통 속도가 빨라진다면 인플레이션 압박이 강해지기 때문에 지금부터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장 연구원은 그러나 통화당국이 유동성 조절에 나서는 시점에 대해선 "경기 회복이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이 확인됐을 때"라며 "올 하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 이후가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역시 올해까지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인상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소비 생산 투자가 모두 마이너스를 나타내는 이 시점에 현실화하지도 않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해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1990년대 후반의 일본처럼 경기가 재차 큰 폭으로 하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 상무는 "지금 당국이 주시해야 하는 것은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 등 국지적 자산 가격 상승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 상무도 2분기에 성장률이 반짝 호전된다 하더라도 3분기에는 다시 둔화될 수 있는 만큼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해선 안 될 것이란 의견을 폈다.

박준동/유승호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