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매출 기준 상위 20개사의 1분기 연구 · 개발(R&D) 투자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내핍 경영' 추세와 달리 미래 성장동력 찾기에는 적극적이라는 방증이다. 반면 시설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급감했다.

8일 주요 기업들이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20대 기업의 R&D 투자액은 3조1382억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자업종 기업의 R&D 투자가 급증했다. 삼성전자 LG전자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반도체 등 4개사의 투자액은 2조3752억원으로 전체 20대 기업 R&D 투자의 75.7%에 달했다. 20대 기업 전체 매출에서 전자업종 4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1.7%다.

LG디스플레이의 매출 대비 R&D 투자액 비중은 지난해 1분기 2.2%(9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5.2%(1781억원)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하이닉스도 9.3%에서 13.9%(1659억원)로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을 늘렸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높은 전자업종 기업들은 1분기 환율효과에 힘입어 투자 여력면에서 다른 업종 기업들에 비해 사정이 한결 나았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1분기를 보낸 자동차 회사들도 R&D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의 R&D 투자액은 지난해 1분기 2279억원에서 올해 1분기 2402억원으로 다소 늘어났다. 기아자동차 역시 1분기 1386억원을 R&D에 투입,지난해(1360억원)보다 소폭 늘렸다. 철강업체들의 R&D 투자 역시 늘어났다. 포스코는 858억원에서 1103억원으로,현대제철은 391억원에서 462억원으로 R&D 투자를 각각 확대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마무리된 이후 산업의 트렌드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해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차세대 먹을거리를 찾다 보니 시설이 아닌 R&D쪽에 투자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해 "기존 제품을 생산하는 라인을 증설하는 작업은 하지 않고 있다"며 "대신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