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사람들은 시장에 자신들이 가차없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 우리(크라이슬러)는 불행하게도 기니피그(실험용 동물)였다." (크라이슬러 자문팀 관계자)

미국 정부가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제휴협상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8일 보도했다.

미국 뉴욕 남부지구 파산법원에 제출된 미국 정부와 크라이슬러 관계자들 간의 이메일에 따르면 지난 3월 초만 해도 크라이슬러는 물론 미국 정부도 피아트와의 제휴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미국 정부는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의 제휴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로버트 나델리 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는 3월 10일 재부무 자동차팀에 보낸 이메일에서 정부의 우려에 일부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휴협상 과정에서 충분한 재무정보 제공을 거부한 피아트의 태도도 문제가 됐다.

크라이슬러 자문팀은 피아트가 충분한 재무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회사측에 보고했다.

자문팀은 또 3월 말 내부 메모를 통해 피아트의 전 세계 합작투자가 경제적, 정치적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재무부와 크라이슬러가 '의심스러운 파트너'(피아트)와 침대에 함께 있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피아트와의 제휴에 우려를 표명했다.

크라이슬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월 30일 피아트와의 제휴를 지지하기 불과 8일 전에도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이던 피아트와의 제휴에 난색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아트의 기술공유 의지도 우려를 자아냈다.

피아트는 제휴가 성사되면 크라이슬러에 대한 기술 지원 상황에 따라 크라이슬러 지분을 최대 50%까지 늘릴 수 있다.

크라이슬러 자문팀의 한 관계자는 4월 22일 미국 정부의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하고 있는 매튜 펠드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아트의 기술공유 의지에 불만을 드러냈으며 펠드먼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크라이슬러 자문팀은 또 재무부에 GM과의 합병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막판까지 크라이슬러-GM 합병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는 결국 4월 30일 파산보호를 신청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의 제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자산 매각을 통한 크라이슬러의 회생안은 현재 막판 암초를 만난 상태. 크라이슬러의 주요 자산을 피아트 등이 대주주가 되는 새 법인에 매각하는 것에 반대해 온 인디애나주 연기금 등 일부 채권자들은 지난 7일 크라이슬러의 자산 매각을 막아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 크라이슬러의 자산 매각에 제동을 걸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날 보도한 이메일도 이들 채권자의 요청으로 법원에 제출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yunzh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