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혀를 찼다. 대형 항공사와 경쟁을 하겠다고? '어림없다'는 전망이 주류였다. 2006년 6월5일 제주항공은 이런 우려 속에 첫 날갯짓을 했다. 국내 최초 저가 항공사라는 자부심으로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벽은 높았다. 대형 항공사의 텃세가 거셌다. "목숨 걸고 탈래?"라는 악성 루머까지 돌았다. 후발 저가 항공사들의 추격도 만만찮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고유가와 고환율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그렇게 3년이 흐른 지금.제주항공은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서며 순항 중이다. 탑승률도 80%에 육박한다.


◆고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다

항공업계는 경쟁이 유독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규 수요를 빠르게 늘리기 힘든 업계 특성상 어느 한 곳의 약진은 곧바로 다른 곳의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 제주항공이 도전장을 내밀자 주변의 시선은 당연히 우려 일색이었다. 속속 후발주자들도 등장했다. 이스타항공 등 비슷한 규모의 저가 항공사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을 등에 업은 에어부산과 진에어라는 '진골' 저가 항공사들도 우루루 명함을 내밀었다.

경영환경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가운데 유가와 환율은 동시에 뛰어올랐다. 이 탓에 후발 저가 항공사인 영남에어는 올초 문을 닫았고,코스트항공은 최근 비행기를 띄우지도 못하고 가라앉았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달랐다. 제주항공의 시장점유율(김포~제주 노선 기준)은 꾸준히 높아져 5월 말에는 13%에 달했다. 대한항공(41%)과 아시아나항공(29%)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양성진 제주항공 상무는 "출범 3년 만에 시장점유율이 두 자릿수를 돌파한 것은 세계 항공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땀으로 고객의 마음을 얻다

제주항공은 처음에 비행기 한 대로 출발했다. 이 비행기에 고장이라도 나면 어쩔 수 없이 결항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제주항공은 이럴 때마다 승객들에게 경쟁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티켓을 제공했다. 가격차가 컸지만 추가 요금을 징수하지는 않았다. 고영섭 제주항공 사장은 "이렇게 쌓은 고객의 신뢰가 제주항공 순항의 첫 번째 비결"이라고 말했다.

프로야구처럼 처음부터 '제주'라는 지역 연고를 강조한 마케팅 전략도 먹혀들었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도 손을 잡았다. 증자를 거듭하면서 지금은 제주도의 지분율이 7%대로 떨어졌지만 출범 당시에는 25%에 달했다. 기왕이면 고향 항공사를 이용하려는 고객 심리를 적절하게 파고든 것이다. 무사고 운항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도 제주항공의 신뢰도를 높였다. 취항 3년 동안 제주항공의 총 운항거리는 1920만㎞.지구 480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오가면서도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도 내지 않았다.

'통큰' 투자 전략도 후발 주자들을 떼어놓은 비결이다. 초창기부터 기존 대형 항공사와 큰 차이가 없는 기종을 투입해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항공기 보유대수도 빠르게 늘려 지금은 7대가 하늘을 날고 있다. 올 하반기엔 보잉 737-800 항공기 1~2대를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이제는 국제선이다"

출범 첫해 118억원에 불과했던 제주항공의 매출은 작년에 545억원으로 불어났다. 아직 흑자를 내진 못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예상된 적자는 적자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초기 자본이 대규모로 들어가는 장치산업"이라며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이익을 내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제주항공은 가까운 거리의 국제선 취항도 확대,일본의 오사카 기타규슈에 이어 태국 방콕과 괌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안재석/박민제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