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월25일 일자리 창출이나 창업 ·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280개 규제의 집행을 2년간 일시 중단하는 규제유예 조치를 발표했다. 경제위기를 조기 탈출하기 위한 한시적 조치다. 재계의 전반적인 반응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핵심이 빠져 아쉽다'는 것이다.

본지 안현실 논설위원의 사회로 권태신 국무총리실장과 최병선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31일 좌담회를 가졌다. 기업 쪽에서는 좀 더 과감한 규제 완화를 주문했고,정부 쪽에서는 후속 조치를 위해 국회가 나설 수 있게 언론과 기업들이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좌담회는 당초 예상시간(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세심한 기업 배려 평가할 만

◇안현실 논설위원=정부가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를 내놨다. 이번 조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정부 쪽에서 기업들을 상당히 세심하게 배려했다. 관광특구 내 옥외영업을 허용한 것이나 중소기업 부설연구소 인정기준을 연구원 5명에서 3명으로 완화해 기업들의 세부담을 줄여준 것 등 그동안 중소기업들이 요구했던 부분들이 많이 반영됐다. 이번에 풀어놓고 보니 계속 푸는 게 좋다고 결정되면 규제를 아예 폐지하는 게 중요하다.

◇최병선 규제개혁위원장=어차피 고칠 것은 즉각 고치는 게 정도(正道)다. 그러나 법이란 게 모두 만든 이유가 있다. 쉽게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한 2년 정도 규제집행을 중단하는 궁여지책을 마련해 본 것이다. 규개위가 석 달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지방자치단체나 현업 종사자,기업인들로부터 어려운 점을 전부 듣고 밤 늦게까지 유예가 가능한 규정들을 골라냈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선진국으로 가려면 가장 중요한 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법치주의 확립과 노동 유연성 문제, 그리고 규제 완화다. 이런 것만 되면 잠재성장률을 2%포인트 정도 더 올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규제유예를 추진했고 앞으로도 잘 후속 조치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노동문제 · 환경규제 하반기 처리

◇안 위원=한시적 규제유예가 꼭 필요한 부분이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김 회장=기업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아쉬운 게 수도권 입지 · 환경 관련 규제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환경 관련 규제를 안 지키겠다는 게 아니라 규제를 합리적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환경규제는 너무 강하고 까다롭다. 기업을 범법자로 만들기에 딱 좋다. 예컨대 폐수 버리면서 최종 종말 처리장에서 체크하는 것과 공장 가동 중에 체크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이런 게 애매하게 돼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이런 규정 때문에 공장을 운영하면서도 애를 먹는다.

수도권 입지규제 문제도 그렇다. 수도권 공장들이 이런저런 규제 때문에 증설을 못해서 충청 경상 전라도에서 공장을 짓는다. 물류문제 등으로 굉장히 애로가 많다. 결론적으로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균형발전보다는 기존 공장들이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이번에 보전지역 내 공장 건폐율을 20%에서 40%로 늘렸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는 모자란다.

◇권 실장=수도권 문제와 노동규제가 문제인데 따로 처리될 것이다. 비정규직 등 노동 관련은 모두 법 개정 사항이다. 전반적으로 청와대와 규개위가 총대를 메고 하반기에 검토할 것이다. 입지 · 환경규제는 수도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전국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을 풀었다. 하이닉스 문제 등은 별도로 하반기에 검토할 것이다.

이번에 하려다 못한 것이 상비약 슈퍼마켓 판매문제다. 지금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나라는 간단한 소화제나 감기약 등 상비약들은 아무데서나 다 살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약국 숫자가 많다지만 제 경우 어제 여의도에서 약국 찾으러 30분 돌아다녔다. 그런데 문 연 데가 하나도 없더라.국민 편의를 생각하면 편의점에 상비약 정도는 팔아야 하는데 업계 반발이 심해서 이번에 못했다.

◇김 회장=이럴 때는 정부가 좀 더 과감하게 나서줘야 한다. 지금은 통상적인 상황이 아니지 않나. 기업들이 생사기로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동문제는 어딜 가서도 답을 시원하게 듣을 만한 데가 없다. 최저 임금 문제도 임금 수준이 높아서 낮추자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것부터 현실적으로 고치는 게 중요하다. 서울과 강원도가 엄연히 거주나 생활비용이 다른데 최저임금은 똑같다. 이런 부분을 고쳐줘야 고용상황도 개선된다.

◇권 실장=하반기에 정부가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국회가 후속조치 잘 마무리해 줘야

◇김 회장=후속조치도 빨리 진행돼야 한다. 예컨대 2006년 중소기업청이 업무보고를 하면서 최저자본금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금년 4월에야 국회에서 처리됐다. 3년이 걸린 것이다. 그 사이 이를 믿고 일을 추진한 기업인들은 낭패를 봐야 했다.

◇권 실장=맞는 말씀이다. 280개 유예대상 중 법 개정 사항이 59개다. 최저자본금 폐지에 3년 걸린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경우인가. 정부도 나서겠지만 기업과 언론들도 국회를 설득하고 압력을 넣어달라.

◇최 위원장=규제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문제는 감사 방식에도 있다. 법은 어차피 다양한 경우를 전부 반영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판단을 해서 법을 유연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감사 때문에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보지만 나중에 감사받을 일 때문에 단속한다.

◇권 실장=정부 입장에선 경제회복을 위해 규제개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회도 이에 나서줘야 하고 안 되는 경우는 언론이 채찍질을 해줘야 한다. 기업들도 여유자금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투자해서 위기를 기회의 발판으로 삼고,일자리도 늘려 줘야 한다.

정리=박수진/김유미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