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대폭삭감.장기간 차별 논란

극도의 경기침체 속에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공기업에 어렵게 취업한 새내기들이 신의 직장 속의 '버린 자식들'이 되고 있다.

정부의 대졸 초임 삭감방침에 따라 주요 공기업들이 속속 급여삭감 결정과 함께 장기간 삭감된 임금체계를 유지한다는 방침까지 정해 이미 사회 문제로 떠오른 비정규직 문제에 이어 또다른 '한 직장 두 임금구조'가 고착화될 우려까지 낳고 있다.

31일 정부와 주요 공기업들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어 대졸 신입직원의 임금을 현재보다 15.4% 삭감하는 방안(삭감시 2천400만원대)을 통과시켰으나 기존 직원들의 임금체계는 노사합의 사항이어서 별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한전은 올해들어 인턴 외에 아직 신입 직원을 뽑지 않았으나 하반기에 200명 가량을 뽑을 전망이어서 이들이 첫 차별 임금을 적용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전은 신입직원들에게 삭감된 임금을 '간부가 될 때까지' 적용한다는 원칙도 함께 결정했다.

결국 이들 공기업의 신입 직원은 차장급 등 일정 직위에 올라갈 때까지 삭감된 임금을 기준으로 호봉이나 임금인상을 적용받아 기존 직원들에 비해 상대적 차별을 받게 된다.

신입 직원 수준에 맞춰 기존 직원의 임금을 조정하지 않으면 한 회사 내에 두 임금체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김쌍수 한전 사장은 대졸 초임 삭감문제가 정부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던 지난 1월 "우수인재를 뽑기 위한 회사간 경쟁으로 현재 신입사원의 임금이 너무 높아 임금을 낮춘 뒤 그 수준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지난주 이사회에서 신입직원의 임금을 16.1% 삭감하기로 결정하면서 동일한 형태의 조건을 달았고 여타 발전사들도 유사한 수준으로 삭감할 계획이다.

이들 에너지 공기업은 지난해 말부터 '고통 분담' 차원에서 2%(간부)∼10%(임원)선에서 임금을 '반납'했을 뿐, 아직 공식적 임금 삭감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다른 공기업들도 유사한 절차를 이미 밟았거나 밟을 예정이다.

한국수출보험공사는 올해 1월 3천900만원선이던 대졸 초임연봉을 25%나 삭감해 2천900만원대로 낮췄다.

히지만 수출보험공사는 이렇게 삭감한 봉급으로나마 올해 직원을 뽑을 계획도 아직 없는 상태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조만간 신입 직원 임금삭감을 회사 차원에서 결정할 예정이나 기존 직원들의 삭감 방안이 거론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공사 관계자는 "내달 이사회에서 임금삭감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나 아직 기존 직원의 임금 삭감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입 직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에 대해 기존 직원들도 '할 말'은 있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공기업의 한 직원은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던 공기업 정원을 정부의 요구로 최근 일시에 줄여버리면서 공기업 직원들 사이에 당장 내년부터 초과인원에 대해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임금까지 삭감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대졸 초임 삭감 필요성을 먼저 제기했던 정부도 딱 부러진 해법을 내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식경제부 당국자는 "상식적으로 회사내 이중 임금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색하고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기존 직원의 임금 삭감은 의무적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