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현대자동차가 배기량 5500cc짜리 엔진을 개발 중입니다. 미국 전문지인 워즈오토로부터 세계 10대 엔진상을 받은 타우엔진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타우엔진은 현재 4600cc급만 상용화된 상태입니다. 제네시스 수출용과 에쿠스 내수용에 장착됐지요. 4.6ℓ짜리의 경우 최고출력 366마력의 힘을 냅니다. 국산차 중 최고 수준이죠.

현대차는 올 하반기부터 5000cc짜리 에쿠스 리무진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바로 타우엔진의 두 번째 버전을 달고 말이지요. 리무진인 만큼 차체가 무겁기 때문에 배기량을 높이는 것입니다.

현대차는 이와 동시에 5500cc짜리 엔진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우 엔진이 4.6ℓ,5.0ℓ,5.5ℓ 등 세 가지 버전으로 탄생하는 셈입니다.

현대차 기술연구소에 물어보니,5500cc짜리 엔진의 경우 현재 테스트 중인데 어떻게 쓸 것인지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오늘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R&D)을 총괄하고 있는 이현순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공학박사 출신인 이 부회장은 현대차 엔진 개발의 산 증인이죠. 그는 "혹시 나중에 필요할까 싶어 초대형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배기량 5500cc짜리 엔진을 개발하면,국내 최대 휘발유 엔진이 됩니다. 수입차 중에서도 메르세데스벤츠 정도만이 S500에 같은 배기량의 엔진을 달고 있지요. 현대차는 왜 이런 엔진을 개발하고 있을까요?

첫 번째 가능성은 에쿠스의 모델 체인지 때 배기량을 높이려는 목적입니다. 갈수록 차량의 배기량이 높아지는 추세도 감안할 필요가 있구요. 예컨대 구형 에쿠스의 배기량은 3.0ℓ,3.8ℓ,4.5ℓ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인데도,5m가 훌쩍 넘는 차체에 3.0ℓ 엔진을 얹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죠.

미국 등 해외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5.5ℓ 엔진을 개발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금까지 해외 수출용 차량에 국내보다 큰 엔진을 탑재해 왔습니다. 제네시스에 4.6ℓ 엔진을 얹어 수출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죠.(내수용 제네시스의 경우 3.3ℓ 및 3.8ℓ 모델 밖에 없습니다.)

현대차는 내년 하반기부터 에쿠스를 해외로 수출할 계획입니다. 이때 3.8ℓ 엔진을 얹은 모델을 아예 빼고,4.6ℓ 및 5.5ℓ 모델만 판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에쿠스를 3.8ℓ 및 4.6ℓ 모델로 수출할 경우,하위급인 제네시스와 배기량이 같아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슈퍼카입니다. 기술력을 과시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슈퍼카 만큼 확실한 재료도 없지요. 슈퍼카를 내놓으려면 큰 배기량의 엔진이나 터보기술 등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차는 에쿠스의 미국 수출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에 이어 현대차 이미지를 한 단계 도약시킬 '비장의 카드'로 여기는 것이지요. 특히 정몽구 회장의 의지가 강하다고 합니다.

현대차는 과거 일본 미쓰비시 엔진을 들여와 차량을 만들었습니다. 엔진의 기술 독립을 이룬 게 1991년이었습니다. 엔진을 겨우 만들기 시작한 지 20년도 안돼 5500cc짜리 초대형 엔진을 개발하는 겁니다. 빨리 테스트해보고 싶군요.

☞ 조재길 기자의 '자동차 세상'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