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은 개별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실 기업의 채무 상환 능력을 높이는 것만이 아닌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재열 KB국민은행연구소장은 29일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강원도 보광 휘닉스파크에서 열리는 한국금융학회(회장 박원암 홍익대 교수) 창립 20주년 기념 금융정책 심포지엄에 앞서 미리 배포한 '금융 부실 채권 처리와 기업 구조조정' 주제발표문에서 "부실 채권 처리의 신속성보다 매각 가치 극대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무너진 금융 시스템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금융회사가 갖고 있던 부실 채권을 빨리 털어내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지금은 은행이 상대적으로 건전하고 부실 채권 관리 능력도 향상돼 부실 채권의 매각 가치를 높여 금융회사의 손실과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업별 맞춤형 구조조정을 제시했다. 그는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의 경우 그룹 전체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려한 구조조정 계획을 세워야 하고 은행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도 기업의 특성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맞춤형 구조조정을 위해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관련 경험을 가진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최근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부실에 대비한 상시적인 모니터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근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은 기업의 규모에 따라 구조조정의 방향이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고문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발표문에서 "구조조정은 개별 사안에 따라 처리 절차와 방법에 있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며 "복잡해진 경제구조에 상응하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대외 충격에 많이 노출돼 있다"며 "대외 여건과 연계한 구조조정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 고문은 중소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인수 · 합병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하며 소호(SOHO) 부문은 은행이 선제적으로 부실 처리에 나서 과잉 투자를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함준호 연세대 교수와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감독체계의 개선 방향'이라는 공동 주제발표를 통해 금융감독은 시장 효율과 금융 안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탈규제가 반드시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적 규제와 시장원리가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