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27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서민과 중소기업 보호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은 최소한의 윤리성과 도덕성이 담보될 때 유지된다"며 "자유시장경제 안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승자와 패자의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선 다수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정책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백 위원장은 "정부가 시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려야 한다"며 '작은 정부론'도 함께 강조했다.

◆문정숙 숙명여대 교수=올해 공정위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생활과 밀접한 대부 · 상조 · 유통 관련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소비자 의식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백 위원장=똑똑한 소비자가 기업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예산을 신청하겠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최근 대기업과 하도급업체 간의 불공정거래 문제를 많이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에서 벗어나 하도급업체 보호에 너무 신경을 쓰면 또 다시 과거처럼 대기업과의 갈등을 야기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백 위원장=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힘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불공정 거래행위는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제도적인 개선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화 구축이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 상생협력 및 하도급거래 서면계약문화 정착 캠페인에 상당히 많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14개 그룹과 3만5000개 중소기업이 협약을 맺고 현금결제 등을 이행하고 있다. 그 결과를 평가,홍보할 것은 하고 조치를 취할 것은 취하겠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공정거래'의 정확한 의미가 아직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시장 지배사업자는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일 때 지정된다. 하지만 기업이 커나가는 특정 시점에서 시장 지배사업자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정태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다.

◆백 위원장=과거에는 시장 점유율 등을 상당히 중요한 기준으로 들여다봤다. 하지만 작년부터 기업결합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 쇼핑 점유율이 90%까지 올라갔다. 과거에는 승인을 안 했겠지만,인터넷 오픈마켓의 대체시장이 굉장히 많을 뿐 아니라 시장 진입이 제조업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을 감안해 승인했다. 정부는 경쟁시장의 여건 변화를 유연한 시각으로 지켜보고 있다.

◆최운열 서강대 부총장=정부 한 쪽에서는 규제가 완화되는데 다른 쪽에선 규제가 양산되는 것을 봤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다. 정부 입법은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두지만 의원입법은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

◆백 위원장=그 사안은 전 부처에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입법부와 사전 협의를 충분히 해서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사전 협의과정에서 해결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본다.

◆민상기 서울대 교수=금융회사의 거래를 단속할 때 금융당국과 공정위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으면 시장에 불신이 생길 수 있다.

◆백 위원장=작년에 산업은행이 산은캐피탈이 발행한 채권을 정상 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54억원을 부과했다. 금융 서비스거래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때 다른 부처와의 기준 불일치가 나타날 가능성은 중요한 지적이다. 다행히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협의 체제를 구축해놨다.

◆김한섭 KTB 부회장=대기업이 사모펀드(PEF) 투자에 참여하면 기업결합신고를 해야하는데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신고의무를 면제시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백 위원장=6월 국회에 내놓은 중요법안 중 하나가 자산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만든 PEF가 기업을 인수할 경우 의결권 행사를 15%로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5년간 적용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물건'을 대기업들에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기업들이 해외투자자들에게 넘어가면서 국부유출 논란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PEF를 통해 국내 기반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본다.

◆장종현 부즈앤컴퍼니코리아 사장=경제 위기를 맞아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다. 구매자로서 정부나 공기업의 역할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공정위가 정부의 구매계약 전반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백 위원장=이미 일부 공기업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보다 투명한 정부 입찰을 위해 조달청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과 정보를 공유,담합을 사전에 적발할 수 있는 체계도 갖췄다.

◆정필훈 서울대 치과대학장=외국환자를 흡수하기 위해 의료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백 위원장=의료 부분도 정부 규제 완화 대상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제약사의 병원에 대한 리베이트 관행은 철저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곧 병원에 대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아직도 의료계에 고질적 불공정 관행이 상당히 많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국제 시장에서의 반덤핑에 관련해서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간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본다.

◆백 위원장=국내기업이 해외에서 제재 받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유럽의 상당히 많은 나라와 최근에는 동남아 국가들과도 상호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들 국가가 한국기업을 조사할 때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다만 중국의 경우는 공정거래를 관리하는 당국이 세 개 부서로 나눠져 있어 접촉 채널을 만드는 데 애로사항이 있지만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