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미국 대기업에서 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다.또한 최초로 여성 CEO끼리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사무기기 업체 제록스는 우르슐라 번스 현 제록스 사장을 신임 CEO로 임명한다고 21일 발표했다.이에 따라 앤 멀케이 현 CEO 겸 이사회 의장은 6월말부터 이사회 의장직만 맡게 된다.포천이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에서 흑인 여성이 CEO 자리에 앉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여성 CEO가 연이어 임명되는 것도 최초이다.

현재 포천 500대 기업에서 여성 CEO가 15명에 불과할 정도로 미국 재계에서 여성은 소수다.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2002년 미국에서 손꼽을만한 여성 CEO는 멀케이를 비롯 팩 루소 전 루슨트테크놀로지 CEO, 칼리 피오리나 전 HP CEO 밖에 없다며, 이들 모두 어려운 회사사정과 여성에게 힘든 기업문화 속에서 운명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포천도 2003년 CEO에 임명된 멀케이를 “우연히 자리에 앉게 된 CEO”라 부르기도 했다.

멀케이는 지난 2001년 171억달러의 부채를 지며 거의 파산 직전에 몰린 제록스의 경영을 맡아 성공적으로 회사를 되살렸다.과감하게 개인용 복사기 사업을 정리하고 컬러 프린터 부문에 역량을 집중했다.그 결과 80% 가까이 떨어졌던 주가는 2004년 두 배로 뛰었고, 배당금도 2007년 전성기 수준으로 돌아갔다.우르슐라 번스는 당시 수석 부사장으로 제품 생산과 재무를 담당했는데, 멀케이와 죽이 잘 맞아 “제록스의 다이나믹 듀오”로 불리었을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번스의 CEO직 승계에 대해 “성공적인 후임 승계의 모델로 교과서에 실릴만하다”고 평가했다.멀케이가 2007년 번스를 사장으로 임명한 뒤 많은 권한을 기꺼이 이양한 게 원만하고 쉬운 승계가 가능하게된 비결이란 설명이다.WSJ는 많은 남성 CEO들은 권력이 주는 걸 두려워해 권한 이양을 기피한다며, 멀케이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승계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