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몰려 있는 단기자금이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돌파,과잉 유동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8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과 2금융권의 단기성 수신은 81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 말 795조원과 비교하면 16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며 지난해 말 747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63조원 이상 증가한 규모다. 금융권의 단기성 수신이란 은행의 실세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예금,자산운용사의 머니마켓펀드(MMF),증권사 고객예탁금 등 만기가 1년 미만인 예치액을 지칭한다.

지난달 말 현재 금융권 단기자금의 현황을 보면 은행의 실세요구불예금이 70조원,수시입출금식예금이 192조3000억원,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등이 121조5000억원,자산운용사의 MMF 119조8000억원,증권사 고객예탁금 14조3000억원 등이다. 올 들어 증가 규모를 항목별로 보면 실세요구불예금 6조4000억원,수시입출금식예금 12조3000억원,MMF 30조9000억원,고객예탁금 5조1000억원 등이다.

금융회사 단기수신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중에 자금을 대거 풀었지만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 생산 투자 등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기반 확충 등의 예산편성을 늘린 데다 올 상반기 중 60% 이상을 집행할 계획이다. 한은 역시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본원통화를 10조원 이상 공급하고 RP 등을 통한 자금공급을 대폭 늘렸다.

정부는 금융권 단기자금이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 등으로 쏠려 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에 출석해 "시중에 풀려 있는 800조원은 분명 과잉 유동성"이라고 말했으며 재정부는 이달 7일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단기 유동성 문제로 인해 특정 지역의 부동산가격이 뛸 경우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거나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 거품에 대비해 올 4분기보다 이른 시점에 유동성 공급을 줄이고 4분기께는 금리 인상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금융권 단기수신이 곧 부동(浮動)자금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요구불예금이나 수시입출금식예금 등엔 거래용이나 예비용 자금이 상당수 들어 있으며 경제규모 확대에 따른 자연 증가도 많다"며 "800조원이 전부 떠돌아다니면서 투기자금화하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는 유동성이 많다는 등의 판단을 할 시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권 단기수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 유동성이 과잉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동성 흡수 여부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얘기다. 한은은 이 때문에 확장적 통화정책 기조를 변경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을 통한 금융권 잉여자금의 조정작업은 검토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