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주요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의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그룹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 본인들이 이런 저런 악재에 시달리며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취임 8개월째인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요즘 그룹 시너지 창출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달 지주 차원에서 출시한 은행, 증권 복합상품이 잘 팔리자 국민은행 전 직원에게 감사와 격려의 이메일을 직접 보냈을 정도다.

황 회장이 시너지 창출에 매달리는 것은 인수합병(M&A)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취임 당시 "가능한 한 올해 상반기까지 대형 금융기관과 대등합병을 추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뜻하지 않게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그의 구상은 차질을 빚게 됐다.

황 회장은 얼마 전 사석에서 "자본확충펀드를 받는 신세로, 지금 M&A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출범 1주년을 얼마 앞두지 않아 가시적 성과를 내기위해 시너지 창출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황 회장은 최근 `과거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황 회장이 2006년과 2007년 상반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이던 시절 이뤄진 미국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디폴트스와프(CDS)에 대한 투자가 큰 손실을 내면서 그 불똥이 튄 것.
우리금융은 최근 자체 조사를 통해 투자 실패의 원인과 책임 규명에 나섰고 이를 토대로 백서를 작성할 예정인데, 황 회장의 책임이 거론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KB지주 고위 관계자는 "황 회장 퇴임 때까지 CDO와 CDS 가격이 정상 수준이었고 손실은 퇴임 이후 발생한 것"이라며 "언제라도 매각 가능한 유가증권의 손실에 대한 책임을 매입 시점의 행장이던 황 회장에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신한지주 라응찬 회장도 요즘 바람 잘 날이 없다.

라 회장은 정.관계 등에 불법자금을 건넨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불투명한 돈거래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라 회장은 박 회장에게 50억 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의 50년 금융인생은 그 돈의 성격에 따라 갈림길에 놓일 전망이다.

그는 최근에는 재일교포 주주로부터 횡령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다.

신한지주는 곧바로 "라 회장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사태 확산을 막았지만, 그룹 회장의 이름이 연일 검찰발로 나오면서 그룹의 명성에 생채기가 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그룹의 덩치가 커지다 보니까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그룹의 발전 방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우리금융 실적이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체결한 경영이행약정(MOU)에 미달한 점도 부담이다.

작년 실적 악화가 과거 경영진의 CDO와 CDS 투자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회장도 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금융의 당기순이익은 작년 상반기 9천618억 원이었지만 이 회장 취임 직후인 작년 3분기 1천575억 원으로 급감했다.

4분기에는 6천648억 원 순손실을 내면서 2004년 1분기 이후 4년9개월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 1천623억 원 흑자를 내면서 한 숨을 돌렸지만, 현대건설 등 출자 전환주식 관련 매각익이 1천600억 원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영업력 강화를 통한 실적 개선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펀드판매사 판매만족도 평가 결과에서 계열사인 우리은행과 광주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3개사가 최하점을 받은 점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그룹의 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올해 1분기에 3천250억 원이라는 대규모 손실을 냈다.

이런 실적 악화는 태산LCD와 관련한 대손충당금 적립과 명예퇴직금 지급, 메릴린치 투자 손실 등 일회성 요인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지만, 손실 규모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하나지주가 영업력을 회복하고 도약할 수 있을지를 놓고 김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최현석 기자 fusionjc@yna.co.kr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