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공식 기자간담회를 가졌다.지난해 6월 취임후 가진 공식 기자간담회에 이어 이날이 두번째다.명목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돼 산은 민영화를 위한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는 점이 계기였다.하지만 이날 민 행장에 쏟아진 기자들의 질문은 대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에 집중됐다.45개 주채무계열(대기업 그룹)에 대한 은행들의 재무평가결과 10곳 안팎이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해야 하고,그중 산은이 주채권은행인 그룹이 금호아시아나를 포함해 7곳이나 되는 상황에서 민 행장의 이날 발언 하나하나에 대기업의 관심이 집중됐다.

#대기업 “수술대까지는 안가도 된다는 생각 갖고 있다”

민 행장은 이 점을 의식한 듯 모두 발언에서 대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그는 “최근 주가 등 시장지표가 생각보다 좋다보니 몇 달전까지만해도 심각하게 구조조정을 생각하던 대기업들이 ‘잘 버티면 어려움을 넘길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기업들의 이같은 태도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대기업들이 마취주사까지는 맞았는데 수술대까지는 안가도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구조조정을 미루고 전 계열사를 다 들고.무거움 몸집을 이끌고 경기회복을 맞이할 경우 상대적으로 경쟁기업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대기업들의 ‘몸조심’이 잘못된 판단임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모펀드(PEF)를 통한 구조조정 제시했다.

민 행장의 설명은 이렇다.예를 들어 한 그룹이 거느리고 있는 10개 계열사중 3개는 핵심이 아니거나 매각할 수 있는 회사라면,추가대출을 받아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보다는 3개를 산은 주도의 PEF에 매각해 완전 계열분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게다가 산은의 매입가격도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 30%를 더한 수준에서 결정되고,PEF가 3∼5년동안 회사를 전문적으로 운영한뒤 시장이 회복된 후 매각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상당히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이다.이 때 원래 매각자에게는 이익을 배분하는 Profit Sharing과 우선매수권이라는 2가지 권리를 준다는 게 민 행장의 아이디어다.

#매각차익도 돌려주고,우선매수청구권도 준다.계열사 팔아라

민 행장은 “매각차익에 기본적인 금융비융에 스프레드(마진)을 더한 수익은 사모펀드에 돈을 낸 재무적 투자자들이 갖게 되고,나머지는 기업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말했다.대기업들이 계열사 매각을 주저하는 이유로 들고 있는 “너무 싼 가격에 계열사를 넘긴다”는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한 마디로 “이렇게 하면 매각가치를 제대로 다 받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우선매수권이라는 바이백(buy-back)옵션을 주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산은 PEF에 계열사를 팔아 초우량 재무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탈바꿈하면 시장이 회복될 때를 대비해 추가적인 인수합병도 가능한 만큼 사업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그는 “3∼5년뒤 다시 되돌아 본 뒤 이미 팔았던 3개중 2개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매각차익을 뺀 가격으로 되사면 된다”며 “만약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산은 PEF가 시장에 매각하면서 발생한 차익을 돌려받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만약 3∼5년이내에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반적인 시각은 올해 4분기에 bottom out한다(바닥을 친다)고 보고 있는 것 아니냐”며 “만약 더블딥 예상이 적중해 하반기에 한 번 더 꺽어지더라도 내년 상반기에는 바닥을 치게 되면 내년 하반기에는 경기상승의 기조로 돌아서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동부그룹,PEF통한 구조조정 첫 케이스 “이익배분도 하고 우선매수권도 준다”

그는 산은 PEF를 통한 첫번째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동부그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민 행장은 “동부메탈에 이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며 “이익배분과 우선매수청구권을 모두 준다”고 잘라 말했다.한 발 더 나아가 “굳이 산업은행과 주거래관계가 아니더라도 인수요청을 해온다면 협상하겠다”고 강조했다.단 주채권은행과 먼저 상의하고 안되면 산업은행을 찾아오라고 강조했다.

#대우건설 풋백옵션 해결방안 빠른 시일내에 도출할 것

시장우려가 커지고 있는 대우건설의 풋백옵션에 대해서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풀어야할 숙제”라고 말했다.민 행장은 “현재 금호와 여러가지 대안들의 장단점을 얘기하고 있고,그중 채권단을 대리해서 산은이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합의를 도출하고,이를 실현해서 금호가 커다란 어려움없이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부연했다.산은과 재무개선약정(MOU) 체결을 추진중인 나머지 주채무계열에 대해서는 “이달 말까지 필요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만약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경우 대응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구조조정을 미룰 경우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강요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다”며 경고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또 “주채권은행이 구조조정방안을 얘기할 때 단독으로 얘기하지 않는다”며 “상위 채권은행이 협의해서 가는 것이고 그 방안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다만 구체적인 강요방안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집중포화를 맞을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GM대우 중장기적으로 성장과 안정 보장돼야 유동성 지원

GM대우에 대해서는 “GM본사로부터 GM대우가 단순히 GM의 조립 공장,하청생산공장이 아닌 글로벌 전략에 의해 핵심기지화한다는 보장을 받아야 산은도 유동성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제했다.단기 운영방안이 아닌 5∼10년까지 중장기적으로 GM대우의 성장과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보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GM대우의 처리는 한국의 자동차산업 경쟁력강화방안까지 감안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앞으로 2∼3년이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과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보장을 GM본사가 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GM에 대한 협상카드를 갖고 있을 때 이를 명확히 해둬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GM본사가 GM대우에 자금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민 행장도 인정했다.그는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는 상황에서 해외법인에 돈을 쓸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 “그렇다면 돈 대신 무엇을 내줄 수 있느냐는 점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고 GM을 압박했다.

#구조조정기업 매각순위는 현대종합상사-하이닉스-현대건설.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이 대주주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의 매각 우선순위와 관련해서는 “현대종합상사가 가장 빨리 끝날 것”이라며 “8~9월께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다음으로 하이닉스반도체를 지목하며 “현대종합상사보다는 더 걸리겠지만 외환은행 중심으로 절차가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시장에 팔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일내에 재매각을 시도하겠지만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는 한참 뒤로 밀려 있다”고 언급했다.이어 “현대건설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최저한도인) 35%를 제외하고는 14.6%의 채권단 보유지분의 매각제한을 해제하면서 산업은행도 3.3% 지분을 팔 수 있게 됐다”며 “하지만 앞으로 주가가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좀 더 보유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산은지주 지분매각전 국내외 은행인수 할 것

민 행장은 이날 산은민영화 이후 경영계획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특히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중은행 인수방침에 대해서 “반드시 국내에서만 수신기반을 확보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국내는 물론 아시아권에서 수신기반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외환,한국씨티로 좁혔던 인수은행 후보를 해외로 확대한 것이다.민 행장은 “수신기반이 없어서 500개 국내지점을 내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산은이 민영화하면서 국내 은행권 시장의 경쟁을 추가적으로 갖는다는 것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M&A가 차입금만 갖고 하기 어려워 장기자금인 자본이 보강돼야 한다”며 “2∼3년 이내에 산은지주회사의 국내외 동시상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방법도 언급했다.다만 “인수대상 은행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산은의 방향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인수 시기에 대해서는 “산은지주의 지분매각전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