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귀엽고 예쁜 캐릭터가 유럽에서도 잘 통합니다. 다양한 유저들의 입맛에 맞는 소소한 재미를 갖고 있죠."(인고 그리블 브루다:IC 공동대표)

"한국 게임업체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부분 유료화 방식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란 황 아에리아게임즈 대표)

유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콘솔게임 천국'이다. 지난해 유럽지역 게임 매출의 52%(121억5300만 유로)가 콘솔게임(TV에 연결해서 즐기는 가정용 비디오게임기)에서 나왔을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스박스360',소니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3'는 오랫동안 콘솔 붐을 이끌어 왔다. 최근엔 없어서 못 산다는 닌텐도의 위(Wii)까지 가세했다. 이렇게 콘솔 천국인 유럽에 한국 온라인게임업체들은 왜 진출하는 걸까.

◆유럽은 온라인게임 열풍

유럽이 온라인게임의 신흥시장으로 급부상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터넷 망의 확산이다. 네덜란드(90.1%),노르웨이(87.7%) 등은 특히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스위스(69%),영국(68.6%),독일(63.8%)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들도 쉽게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 올해 초 '2009 세계 게임시장 전망 세미나'에 참석차 방한한 카스텐 밴 휴센 게임포지 대표는 "온라인게임은 2006년 이후 매년 25%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게임업체 아에리아게임즈 유럽지사의 니콜라스 피오트 매니징 디렉터는 "유럽에서 온라인게임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2006년 8월부터 독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터키어로 유럽 전역에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며 "현재 유럽에서 15개 온라인게임의 판권을 갖고 있는데 두달 안에 5개 게임을 더 들여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온'의 개발사 엔씨소프트는 영국 브라이튼에 직접 유럽지사를 세우고 '길드워''리니지2' 등을 선보였다. 엔씨소프트 유럽지사의 베로니크 랄리에 매니징 디렉터는 "PC게임으로 보급되는 길드워가 북미,유럽에서 600만장 이상 팔리는 등 판타지 세계를 다룬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가 유럽에서 통하는 것을 경험했다"며 "지금은 아이온을 선보이기 위해 아이템,의상,게임 스토리,채팅,언어 번역 등 현지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500만달러(185억원) 가량의 매출을 낸 독일 웹게임(다운받지 않고 웹사이트에 바로 즐기는 가벼운 게임)업체 게임포지 역시 일찌감치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경우다. '노스테일''스페이스카우보이''메틴2' 등 한국 온라인게임 3개를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선 인기를 끌지 못한 MMORPG 메틴2로 월 20억~3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한국 게임 유럽서도 통한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아에리아게임즈 유럽지사는 바른손게임즈의 '라스트 카오스',소노브이의 '샤이야',엔도어즈의 '군주온라인'(유럽 서비스명 'Luminary') 등 9개 한국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이 회사의 사이트를 찾는 사람이 월 22% 이상,연 110%씩(2009년 3월 기준) 늘어날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퍼블리셔다. 본사 사장이자 유럽지사장을 맡고 있는 란 황 CEO는 "돈 주고 구입하는 콘솔게임과 달리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게임의 부분유료화는 딱 맞아떨어지는 현지화 전략"이라며 "특히 독일은 게임을 다 이해한 다음에 돈을 쓰려는 신중한 사람들이 많아 부분유료화로 서비스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분유료화란 무료로 온라인게임에 접속해서 즐기게 하되 아이템,게임머니 등을 판매해서 수익을 얻는 한국형 비즈니스 모델이다. 유럽에선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라 불린다.

7000명이 근무하는 허버트 브루다 미디어그룹에서 만든 게임퍼블리셔 브루다:IC 역시 부분유료화 모델을 채택한 한국게임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라비티의 MMORPG '라그나로크'를 시작으로 캐주얼게임 '오디션''S4리그''컴온베이비' 등 최근 2년 동안 총 10개의 한국게임을 유럽에 선보였다. 이들이 온라인게임사업에 뛰어든 건 한국업체의 성장가능성을 눈여겨보며 '돈 되는 사업'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킴 카스퍼스 브루다:IC 공동대표는 "한국형 게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캐릭터가 온라인게임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현지화 · 커뮤니티가 성공의 관건

급성장하는 유럽시장을 잡으려면 무엇보다 온라인게임의 네트워킹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 1000만달러를 들여 다중접속총싸움게임(MMOFPS) '파라벨룸'을 만든 독일 개발사 아코니게임즈의 창업자 안드레 헙스트 마케팅 디렉터는 "네오위즈게임즈,NHN 등 한국업체를 만나서 게임의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하는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무엇보다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신경을 많이 썼고 유저들의 요구대로 콘텐츠를 업데이트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다;IC 역시 S4리그를 러시아어로 먼저 서비스했을 때 그들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따로 열었다.

유럽 문화를 담은 아이템,배경 등 현지화 전략 역시 성공 요소로 꼽힌다. 영어는 물론 독어 불어 러시아어 터키어 이탈리아어 등 유럽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언어로 매끄럽게 게임 언어를 바꾸는 것은 기본이다. 스펜서 치 아에리아게임즈 유럽지사 오퍼레이션 매니저는 "독일 10월 맥주 축제 때 샤이야 게임에 맥주 아이템을 넣었더니 게이머들 반응이 아주 좋았다"며 "앞으로도 유러피안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반이 부분유료화 게임으로 유럽에 진출하는 한국업체들은 특히 결제시스템을 잘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에선 모바일 결제 수수료가 45~50%에 달하는 데다가 나라마다 결제 시스템이 달라 페이팔,프리페이드 카드 등 다양한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브루다:IC도 라그나로크를 들여올 때 한국의 결제회사인 엔캐시의 시스템을 함께 채택한 바 있다.

세계 최대 게임대회인 월드사이버게임즈(WCG)의 유럽 파트너사인 독일 게임업체 ACE의 김동승 사장은 "2004년엔 프랑크푸르트 산업진흥원에서 게임이 웬말이냐고 했던 60대 한 공무원이 지금은 게임업계 오프라인 모임인 게임플레이스라는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며 "지금 불황인데도 잘되는 건 게임밖에 없다"고 말했다.

뮌헨 · 베를린(독일)=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