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부동산 투기 조짐이 포착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규제완화에 편승한 투기세력을 겨냥해 선제적이고 단호한 대응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이뤄진 부동산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책을 발판으로 앞으로도 시장의 회복과 선순환을 돕겠지만 투기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다.

이는 규제완화 일변도로 달려왔던 부동산 정책 기조의 숨고르기를 통해 투기의 불씨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경제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시장을 제 궤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기저에는 투기1번지 격인 강남3구의 가격이 꿈틀대는 시장 상황으로 미뤄볼 때 더 이상의 부동산 규제.세제 완화 정책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부동산시장 기지개

침체 일로를 걷던 부동산시장은 4월 들어 이전과 다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월 대비 전국 주택가격은 작년 10월(-0.1%)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12월(-0.7%)에 가장 많이 떨어진 뒤 점차 낙폭을 줄여 4월에 0.1% 상승했다.

7개월 만의 상승이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는 작년 6월부터 하락해 12월에는 2.6%나 떨어지는 등 8개월 동안 내려앉았다.

지난 2월(0.3%)에 반짝 상승했다가 3월(-0.1%)에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 4월(0.7%)에 다시 올랐다.

전체적인 시장 동향은 아직 미약하지만 강남 3구의 재건축 아파트는 부동산 규제완화가 이어지면서 올해 들어서만 13.36%나 폭등하는 등 일부 지역 아파트들이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의 대명사인 잠실주공 5단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개포동 주공아파트 등은 작년 말의 저점에 비해 3억원 이상 오른 채 거래되기도 했다.

과거 부동산시장 과열은 늘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필두로 시작됐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일반아파트, 다른 지역 아파트로 급속히 전이될 것을 주시하고 있다.

집값으로 치면 강남 3구에 버금가는 과천은 지난 1월까지 11개월째 하락했다가 2월(1.4%)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뒤 4월에는 무려 7.6%나 뛰었다.

판교 신도시지역 아파트 프리미엄이 다시 치솟고 최근에는 수도권 아파트의 청약이 모두 1순위에서 마감되는 등 이미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강남 이외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아파트 거래현황을 보면 작년 12월에는 전국적으로 1만9천542건이었지만 3월에는 3만7천398건으로 배 가까이로 늘었고 강남3구의 경우 같은 기간 244건에서 1천186건으로 불어났다.

이에 대한 정부의 판단은 아직 버블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지적으로 급등세를 보인 지역이 있지만 시장 전반으로 볼 때는 이제 막 얼어붙은 경기가 풀리려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열 진단을 내리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윤증현 장관은 "최근 시장 움직임은 풍부한 시중 유동성과 낮은 금리,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경기바닥론에 힘이 실릴 경우 개발호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불안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주택가격 및 거래량 추이, 시중자금 흐름, 주택담보대출 동향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부동산투기 꿈도 꾸지 마라"

윤 장관은 앞으로 버블이 나타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지만 강남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라도 투기 조짐이 보이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뿐 아니라 다른 비금융적인 수단도 동원해 투기를 반드시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입장은 그간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에 온기는 불어넣겠지만 앞으로 온기 수준을 넘어 비정상적인 열기로 번질 경우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뜻이다.

예컨대 투기 움직임이 포착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투기지역으로 묶어 LTV, DTI의 족쇄를 채우고 상황에 따라서는 이들 부동산 대출 기준의 수위를 높일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 장관은 "국지적인 시장불안이 발생하면 대출기준 강화 등 금융수단을 통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선책인 비금융적 수단으로 가장 강력한 것은 세금이다.

지난 4월 국회가 개정한 소득세법은 투기지역에 대해서는 1가구 3주택자 이상의 양도세를 10% 포인트 더 물리도록 못박은 만큼 투기지역에 묶이면 양도세 부담도 자동적으로 커지게 된다.

윤 장관은 나아가 "우리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투기가 재발하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된다.

불로소득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단호한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 시장 상황에 비춰 부동산시장에 대한 추가 규제완화와 세제 감면이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윤 장관은 "강남3구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 검토를 유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던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추가 규제완화도 쉽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조장했다가는 정부가 애써 추진하고 있는 경기 부양이나 성장 잠재력 확충 노력이 물거품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부자감세', '투기조장' 등의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향후 부동산 시장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실물경기 회복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시장이 활성화되는 차원이라면 반가운 일이지만 800조원에 이르는 시중의 단기 유동성과 부동산 규제완화가 맞물려 집값이 급등세를 보인다면 과거 금감위원장 시절 금융규제를 통해 부동산값을 잡은 바 있는 윤 장관이 다시 강력한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