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19개 금융사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자본충실도 테스트) 결과가 발표되자 자본이 부족한 은행들은 자본확충 '레이스'에 돌입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더 이상 스트레스 테스트는 없다"고 밝혔으며,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 은행들의 신인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가이트너 장관이 은행들이 수익을 냄으로써 미국은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덫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고 전했다

FRB와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통화감독청은 7일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10개 은행이 총 746억달러의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공동 발표했다. 미 금융당국은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 19개 금융사들의 손실 규모가 올해와 내년에 모두 5992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제 아래 필요 자본 규모를 추정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외부 애널리스트들이 전망했던 수천억달러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발표] 美 10개은행 746억弗 자본확충 필요…'증자 레이스' 예고
금융사별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339억달러 △웰스파고 137억달러 △제너럴모터스(GM)의 금융 자회사인 GMAC 115억달러 △씨티그룹 55억달러 △모건스탠리 18억달러 △리전스파이낸셜 25억달러 △선트러스트 22억달러 △키코프 18억달러 △피프스서드 11억달러 △PNC 6억달러 등 총 10개사 746억달러다. 이 가운데 BOA의 자본 부족액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이 같은 발표가 나오자마자 BOA는 신주를 발행하고 기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며,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씨티그룹은 이미 발표했던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웰스파고는 60억달러 규모의 보통주 발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모건스탠리는 보통주와 무보증 채권을 발행,총 50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관건은 시장의 소화력이다. 신주를 발행하고 자산을 내놔도 인수할 투자자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자본확충 이행 시한은 오는 11월9일로,6개월간이다. 조슈아 시겔 스톤캐슬 파트너스 이사는 "시장에 어느 정도 수요야 있겠지만 몇 개월 안에 약 600억달러에 이르는 자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10개 금융사 모두 민간에서 자본을 확충할 능력이 있다"며 "자본을 늘리면 신인도가 올라갈 것"으로 낙관했다. 구제금융(TARP) 실탄도 1100억달러 남아 있다. 버냉키 의장은 "금융권 안정을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가이트너 장관도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불확실성이란 구름이 걷혔으니 민간자본이 원활히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초기 스트레스 테스트 계획을 발표했다가 시장에서 호되게 덴 것을 의식한 듯 "나머지 금융 시스템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6개월 내 민간자본을 유치하지 못했을 때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은행 경영에 개입할지도 관심이다. 정부는 일단 추가 구제금융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방침 아래 기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주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부가 은행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면 국유화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물론 정부는 일종의 편법이긴 하지만 7년 이내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한 '의무전환우선주'를 보통주 자본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을 제시해놓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일부 금융사들은 보통주 전환으로 부분 국유화 과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이트너 장관도 "가능한 이른 시간 내에 금융사를 민간자본에 넘겨주고 빨리 손 털고 나올 것"이라며 부분 국유화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지원 없이 기존 이사회와 경영진이 회사의 생존력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는지 평가할 것"이라며 "시시콜콜한 경영 일상에 개입하지는 않겠지만 주주와 납세자들을 위해 핵심적인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