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변죽만 울리는 기름값 정책
정유사들의 강한 반발에도 정부가 제도 시행을 밀어붙인 것은 고공행진 중인 기름값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다. 정부의 논리는 명료하다. 정유사별 공급가격을 공개하면 회사 간 경쟁이 촉발돼 자연스럽게 기름값이 떨어진다는 것.그동안 업계 영업비밀로 여겨지던 공급가격의 뚜껑을 여는 초강수를 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석에서 만난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기름값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다"고 털어놨다. 정유업계 역시 "이제 나올 만한 대책은 다 나왔다"며 이번 대책을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약발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내 정유사들의 시장 과점체제를 깨기 위해 석유제품 관세를 원유 관세(1%)만큼 내려 휘발유 등 석유제품 공급채널을 확대하려고 했지만 제도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수입 휘발유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0.5%에 불과하다. 주유소 상표표시(폴사인)제 폐지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현재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달지 않은 주유소는 전체의 2% 안팎에 그치고 있다.
이번 제도 시행을 앞두고 업계에선 업체 간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A사는 중간유통 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을,B사는 일선 주유소 공급가격을 공개하는 등 가격신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란만 줄 것이란 지적이다. 가격 공개가 정유사들의 암묵적 담합행위를 불러와 오히려 기름값을 올리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기름값 인하 유도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휘발유 값의 60%에 육박하는 세금비중은 그대로 놔둔 채 시장유통구조 손질만으로 기름값을 내리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변죽만 울리는' 기름값 정책에 매번 실망하는 국민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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