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의 정유사별 주유소 공급가격 공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는 8일부터 회사별로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의 평균 가격을 주간 단위로 공개해야 한다.

정유사들의 강한 반발에도 정부가 제도 시행을 밀어붙인 것은 고공행진 중인 기름값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다. 정부의 논리는 명료하다. 정유사별 공급가격을 공개하면 회사 간 경쟁이 촉발돼 자연스럽게 기름값이 떨어진다는 것.그동안 업계 영업비밀로 여겨지던 공급가격의 뚜껑을 여는 초강수를 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석에서 만난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기름값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다"고 털어놨다. 정유업계 역시 "이제 나올 만한 대책은 다 나왔다"며 이번 대책을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약발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내 정유사들의 시장 과점체제를 깨기 위해 석유제품 관세를 원유 관세(1%)만큼 내려 휘발유 등 석유제품 공급채널을 확대하려고 했지만 제도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수입 휘발유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0.5%에 불과하다. 주유소 상표표시(폴사인)제 폐지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현재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달지 않은 주유소는 전체의 2% 안팎에 그치고 있다.

이번 제도 시행을 앞두고 업계에선 업체 간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A사는 중간유통 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을,B사는 일선 주유소 공급가격을 공개하는 등 가격신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란만 줄 것이란 지적이다. 가격 공개가 정유사들의 암묵적 담합행위를 불러와 오히려 기름값을 올리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기름값 인하 유도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휘발유 값의 60%에 육박하는 세금비중은 그대로 놔둔 채 시장유통구조 손질만으로 기름값을 내리는 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변죽만 울리는' 기름값 정책에 매번 실망하는 국민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