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보콜트에 있는 발전기 회사인 플랜더가 최근 부품제조설비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자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들이 납품경쟁을 벌였다. 경쟁에 나선 기업은 한국의 한국공작기계(대표 류흥목)와 일본의 M사 두 회사다. 40년 이상 공작기계만 만들어온 두 회사는 자존심을 건 대결을 했다. 공작기계는 일본이 한국보다 한발 앞선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독일 회사는 한국공작기계를 선택했다. 이 회사가 공급한 설비는 풍력발전기용 부품을 가공하는데 사용하는 대형 수직선반이다.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은 주로 독일의 공작기계를 수입한다. 이번 한국공작기계의 독일 수출은 우리나라 공작기계의 기술과 품질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한국공작기계는 플랜더 외에 지겐 등 많은 독일 기업에 공작기계를 공급했다. 지난해에만 독일에 1500만달러어치를 납품했다.

한국공작기계만 독일 등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게 아니다. 남선기공(대표 손종현) 두산인프라코어(대표 최승철) 위아(대표 김치웅) 화천기계공업(대표 조규승) SIMPAC(대표 서련석) 기흥기계(대표 김민수) 넥스턴(대표 문홍기) 동양마그닉스(대표 이치성) 삼천리기계(대표 서홍석) 한광(대표 계명재) 와이지원(대표 송호근) 등도 선진국에 수출하는 공작기계 업체다.

국내 154개 공작기계업체가 수출하는 규모는 12억달러를 넘는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회생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데도 공작기계업계는 오히려 새로운 비전을 내놓고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까지 공작기계 수출규모를 50억달러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를 공작기계업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한국공작기계협회(회장 류흥목)가 주축이 되어 추진하기로 했다.

협회는 올해부터 중소기계업체들이 수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시장개척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위기 때 공작기계 강국인 일본을 따라잡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지난 4월11일부터 16일까지 베이징 신중국국제전시장에서 열린 중국공작기계박람회에서 독일 등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대규모 수주를 따냈다. 국내 공작기계업체들은 360여건의 상담을 벌여 2000만달러의 수출 주문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국공작기계 쌍용머티리얼 한광 DMC 한성정공 위딘 DTR 세기정공 등 21개 공작기계업체들이 한국관을 마련해 참가했다. 현대기아기계 두산기계 한화테크엠 등 대기업은 자사 부스를 설치했다. 특히 한국공작기계는 전시회 기간 중 공작기계 8대 370만달러어치를 파는 계약을 맺었다. 한국공작기계가 판매한 수직선반(모델 VTB2530E)은 발전기와 선박엔진 등을 가공하는 데 활용된다.

공작기계업체들은 앞으로 유럽공작기계전 등 10여개 해외 전시회에도 참가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국제공작기계전을 개최해 해외 바이어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공작기계협회는 내년 4월13일부터 18일까지 고양시 킨텍스에서 '서울국제공작기계전'(SIMTOS 2010)을 개최하기로 했다.

이 전시회에는 독일 일본 한국 등 각국에서 314개 업체(2518개 부스)가 참여한다.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공작기계협회가 주관하며 과기부 중소기업중앙회 무역협회 대한상의 무역협회 산단공 등이 후원한다.

국내 기업이 이 전시회에 참가하면 미개척 지역으로 공작기계를 수출할 기회를 얻게 된다. 협회가 국내외 바이어를 발굴해 주는 사업도 전개할 방침이다. 6만4000명의 공작기계 바이어의 이력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참관객의 등록 내용을 전산화하기로 했다.

사실 공작기계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다. 그래서 머더 머신(mother machine)이라고 불린다. 때문에 공작기계의 품질이 높아지면 모든 기계의 수준이 올라간다. 이러한 공작기계의 조건을 고려해 협회는 국내 공작기계업체들이 품질과 기술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협회는 지난 3월 말 지식경제부로부터 공작기계 분야의 표준을 전담하는 표준개발협력기관(COSD)으로 지정됐다.

이번 지정으로 공작기계협회는 정부로부터 △표준개발협력 지원 △표준기술력 향상 △학술용역표준화 △민간표준화 △국제표준(ISO)제정참여 등의 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됐다. 류흥목 공작기계협회장은 "이번 조치로 공작기계분야 241종의 표준제정과 개정을 비롯 국제표준화 대응 등 정부가 주도하던 사업을 협회에서 담당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