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 구조조정에 채찍을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직접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빨리 하라"고 촉구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압박했다. 경기가 좋을 때 무리하게 기업을 사들였다가 자금난에 허덕이는 대기업이 부실을 털어내지 않고는 위기탈출을 못한다는 인식에서다. 이들이 문제의 기업을 얼마나 빨리 파느냐에 구조조정의 성패가 달려있다.


◆5월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달

현재 구조조정은 △45개 대기업그룹(빚이 금융권 전체 빚의 0.1% 이상인 주채무계열) △개별 대기업(금융권 빚이 500억원 이상) △건설 · 조선 · 해운 등 업종별 등 세 갈래로 나눠 추진되고 있다.

대기업그룹의 경우 재무구조개선약정(MOU) 대상이 10개로 사실상 확정됐다. 이들은 5월 말까지 약정을 맺어야 한다. 건설 · 조선사 등에 대한 1,2차 구조조정도 일단락된 가운데 12월 말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재평가가 추진되고 있다.

개별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추가됐다. 은행들은 4월 한 달간 빚이 500억원 이상인 1422개 대기업(311개는 대기업그룹 소속사)을 대상으로 재무구조,영업실적,현금흐름 등을 기초로 기본평가를 실시해 부실 우려가 있는 400여곳을 골라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은행들은 다음 달부터 이들 400여곳에 대한 세부평가에 착수해 오는 6월 말까지 구조조정 대상을 확정한다. 여기서 C등급을 받은 곳은 워크아웃,D등급을 받은 곳은 퇴출시킨다.

채권단은 빚이 500억원 미만인 기업 등도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6월 말까지 구조조정 대상을 골라낸다. 김종창 원장은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존 가능한 기업은 꼭 살리고 도저히 안 되는 기업은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진행 과정에서 계열사 매각을 압박하는 은행권과 가능하면 안고 가려는 대기업과 적지 않은 갈등이 예상된다. 부실여부를 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출렁일 수밖에 없고 시장은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당근과 채찍으로 구조조정 가속화

그동안 채권은행들은 건설 · 조선사 등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손충당금(손실로 처리해야 할 금액) 부담 때문에 소극적이었다. 방관하던 금감원이 채찍과 당근을 동원한다. 김 원장은 비상경제대책회의 후 은행장들을 불러 "구조조정 추진 상황을 밀착 점검해 주채권은행의 대응이 미흡하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당근은 워크아웃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할 때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을 절반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여신은 요주의면 7%,고정이하면 2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지만 이를 절반만 줄이기로 했다. 또 워크아웃 신청이 받아들여진 뒤 경영정상화계획이 확정되기 전까지 2~3개월간의 채권동결 기간을 연체 기간에서 빼주기로 했다.

◆법정관리 악용 봉쇄

건설 ·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C등급을 받은 일부 업체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경영권이 제한당하지만 법정관리의 경우 경영권을 유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부실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남용해 경영권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채권단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은행장들은 부실기업 대주주의 철저한 자구노력을 유도하고 이해관계자의 공정한 책임 분담을 통해 도덕적 해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기업 구조조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합의문'을 채택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