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에 환율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민들이 귀국길에 오르거나 지갑을 닫으면서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 북한의 상사 주재원들이 한국인들을 대신해 '큰 손'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교민들이 밀집해 있는 시타(西塔) 부근의 가구점에서는 최근 2만위안(390만원) 안팎의 가구세트를 별 망설임없이 사들이는 북한 주재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북한 주재원들에게 한달간 5세트의 가구를 팔았다는 한국 가구 판매점은 "경제 위기 이후 매상의 대부분을 북한 주재원들이 올려주고 있다"며 "올 들어 판매한 가구 상당 부분을 북한사람들이 사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과 정서나 문화가 비슷한 북한 사람들이 한국식 가구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며 "마음에 들면 흥정도 별로 하지 않고 2만위안이나 3만위안의 비교적 고가 가구들을 거침없이 사들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선호하는 가구는 세련된 한국식 장롱과 침대, 화장대 등이며 거실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탓인지 소파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타 주변 상인들은 "주요 고객이었던 한국 교민이나 중국인들보다도 씀씀이가 더 크다"며 "한국보다 경제가 더 어렵다고 들었는데 영문을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한 화장품 가게 주인은 "20위안짜리 향수를 꽤 비싸게 판 적이 있다"며 "마음에 들어 하기에 깎아줄 요량으로 가격을 높여불렀는데 거침없이 돈을 지불하더라"고 말했다.

식당에서도 북한 주재원들은 '통 큰' 고객으로 환영받고 있다.

한국 돈 가치가 높았던 시절 한국인들이 보여줬던 자기과시적인 행태를 요즘은 북한 주재원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교민은 "시킨 음식의 절반은 남기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중국인들보다 더 많은 음식을 시키고 주문도 고급 요리 위주로 하니까 무시할 수가 없다"고 북한 주재원이나 상사원들의 변화된 위상을 전했다.

이들의 씀씀이가 커진 데 대해 북한 소식통들은 "상부에 일정액을 상납하면 사유재산을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출이나 물품 구매를 위해 각급기관에서 중국에 파견된 북한 주재원들은 1인당 연간 5천-6천달러 규모의 정해진 '충성자금'만 내면 귀국할 때 가구며 가전제품의 반입이 허용되고 평양에서의 아파트 매입이나 돈을 쓰는 것도 묵인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반면 충성자금을 제때 내지 못할 경우 심한 추궁과 함께 2-3년의 부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소환되기도 한다.

한 소식통은 "선양에 파견나온 북한 주재원들은 광물 등 수물품 판매권이나 수입품 구매 계약권을 갖고 있어 그 역할이 크다"며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들과의 거래 과정에서 적지않은 커미션을 챙길 수 있고 상납만 제대로 하면 이런 관행이 용인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p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