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고용보험기금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9일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고용보험기금 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2조5000억원 선에 달할 전망이다. 벌써 3년째 적자 행진이다. 경영 여건 악화에다 실직자들이 늘어나면서 각종 지원금 신청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기금 적립액도 5년여 만에 최저치까지 줄었다. 이에 따라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경우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흔들리는 고용보험기금

노동부에 따르면 감원 대신 휴직이나 훈련 등을 실시하는 기업에 지급하는 고용유지 지원금 규모는 올 들어서만 지난 16일 기준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고용유지 지원금은 연간 기준으로도 1000억원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연간 최고 기록이었던 1998년 당시의 974억원을 올해는 100여일 만에 경신한 것이다. 실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실업 급여도 올 들어 매월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 돈들은 모두 고용보험기금에서 빠져 나간다. 고용보험기금 지출 중 65%가량이 실업 급여이며 나머지 35%는 고용안정 · 직업능력개발 지원금이다. 실업자 훈련지원금,고용촉진 장려금,고용유지 지원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올 들어 실직자들이 급증하고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고용보험기금은 전방위로 돈이 빠져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해졌다. 실제로 노동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추경예산안에서 당초 기금 예산안 5조6562억원보다 2조1157억원 늘어난 7조7719억원을 반영했다. 당초 예산안이 1000억원가량의 적자를 반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추가로 2조1000억원가량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 돈이 모두 쓰인다고 가정하면 적자는 2조2000여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적자폭은 더 커질 수 있다. 추경예산안이 늘어나는 기금 수요자들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가령 지난달 실업 급여 지출액은 3732억원으로 최근 증가세를 감안하면 연간으로는 4조원을 웃돌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추경예산안에 실업 급여는 3조7927억원만 반영돼 있다.

고용유지 지원금도 마찬가지다. 100여일 만에 1000억원을 돌파했고 이 추세라면 올해 3500억원을 넘어설 기세다. 하지만 추경예산안에서 고용유지 지원금은 3070억원만 반영돼 있다.

◆고용보험료 인상 가능성도

설상가상으로 수입은 줄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이 증가하려면 취업자(보험 가입자)가 늘든가 임금이 올라야 한다. 그래야 보험료 수입이 증가한다. 고용보험료는 현재 실업 급여의 경우 직원과 회사가 각각 임금의 0.45%를 내고 고용안정 · 직업능력개발 지원금은 회사 측이 직원 수에 따라 0.25~0.85%를 낸다. 이 밖에 기금의 운용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는 등 실업난이 심화하고 있어 보험료 수입 증가를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회사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최근의 저금리를 감안하면 큰 운용 수익도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해의 경우 주가 폭락 등으로 고용보험기금 운용 수익률은 2%에 그쳤다.

고용보험기금은 2006년까지만 해도 매년 흑자폭이 커지며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2007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까지 2년 동안 총 1조1000억원 넘는 적자를 내 기금이 8조2000억원까지 줄어들었다. 여기에 올해 적자폭을 감안하면 연말께는 5조~6조원 수준까지 줄어든다. 노동부는 기금의 적정 수준을 전년도 지출액의 1~1.5배로 정해 놓고 있다. 올해 7조7719억원의 지출 예산안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8조~9조원가량을 적립해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출액 규모 밑으로 떨어지게 됨에 따라 고용보험료 인상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다. 1999년에도 외환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 때문에 보험료를 올린 적이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 여부는 경기 상황에 달려 있다"며 "현재로서는 인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인상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