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7.3% 적은 82조1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설비투자가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것은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가 줄어들었던 2002년 이후 7년 만이다.

산업은행 산하 산은경제연구소는 19일 '상반기 설비투자 계획 조사 결과 및 설비투자 활성화 방안'을 통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월부터 한 달간 전국의 3598개 기업에 대한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분야별로는 제조업 투자가 IT와 자동차산업의 부진으로 전년도 51조9000억원에서 17.4% 감소한 42조9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극심한 수요 부진 속에 글로벌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반도체가 54.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반도체와 LCD 등을 포함한 IT산업 전체로는 49.6% 감소한 10조1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어 자동차(-23.8%) 조선(-16.1%) 등 수출 주력 산업의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철강산업에 대한 투자는 고로 증설의 영향으로 50.3% 늘어나고 석유화학 역시 중질유 고도화 설비 등 대규모 계속사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49.4% 증가가 예상됐다.

투자 성격에 따라서는 신제품 생산과 연구 · 개발에 대한 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해 성장 잠재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연구소는 신제품 생산 투자가 27.3%,연구 · 개발 투자가 8.9% 각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감소폭이 40.3%로 대기업의 15.8%에 비해 2.5배 높아 중소기업이 경기 침체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제조업은 WCDMA,와이브로 등 통신서비스 분야의 투자가 5.0% 줄어든 반면 발전소 및 청정에너지 공급 시설의 확대 등으로 전기 · 가스업종이 25.9% 증가하면서 전체적으로 7.1% 늘어난 39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산은 연구소는 그러나 이 같은 감소폭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전 산업의 설비투자가 37.2%나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요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재무구조와 내부 유보를 바탕으로 대규모 계획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투자 위축 분위기의 강도도 약하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수요 진작과 불확실성 해소에 힘쓰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투자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 구조조정의 강도를 높여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자금을 우선적으로 지원받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소 관계자는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탓에 기업들이 당장은 불요불급하다고 판단되는 신제품 생산이나 연구 · 개발 투자비부터 축소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의 일몰 시한을 연장하고 공제 비율도 높이는 등 적극적인 투자 촉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